항목 ID | GC033007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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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孫舜孝 |
영어음역 | Son Sunhyo |
이칭/별칭 | 경보(敬甫),물재(勿齋),칠휴거사(七休居士),문정(文貞)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정제규 |
[정의]
조선 전기 제천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평해(平海). 자는 경보(敬甫), 호는 물재(勿齋)·칠휴거사(七休居士). 시호는 문정(文貞). 아버지는 군수 손밀(孫密)이며, 어머니는 정선 군사(旌善郡事) 조온보(趙溫寶)의 딸이다.
[활동 사항]
손순효(孫舜孝)[1427~1497]는 1453년(단종 1) 생원 때 증광 문과(增廣文科), 1457년(세조 3) 문과 중시(文科重試)에 급제하였다. 그 후 사헌부 장령(司憲府掌令) 등을 거쳐 성종 때 홍문관 전한 겸 사헌부 집의로서 17항목의 정책을 상소한 끝에 채택되어 1471년(성종 2) 형조 참의에 특진되었으나 직무상의 과오로 상호군(上護軍)으로 전임되었다. 1475년(성종 6) 홍문관 부제학을 거쳐 승정원 동부승지·우부승지·좌승지를 지내고, 1478년(성종 9) 승정원 도승지가 되었다.
윤비(尹妃) 폐위 때는 그 부당함을 극간하였다. 형조 판서 등을 지내고 1480년(성종 11) 중추부 지사(中樞府知事) 때 정조사(正朝使)로 명나라에 다녀와서 사헌부 대사헌 등을 지내고 의정부 좌참찬에 이르렀다. 1485년(성종 16) 임사홍(任士洪)을 두둔하다가 경상도 관찰사로 좌천되었으나, 곧 의정부 우찬성이 되었다. 1496년(연산군 2) 중추부 판사(中樞府判事) 때 고령을 이유로 사퇴를 청하였으나 불허되고 궤장(几杖)을 하사받았다. 『세조실록(世祖實錄)』 편찬에도 참여하였다.
[학문과 저술]
성리학에 밝고 『중용(中庸)』, 『대학(大學)』, 『역경(易經)』에 정통하였다. 문장이 뛰어나고 그림은 화죽(畵竹)에 능하였으며, 청렴하기로 이름이 났다. 1487년(성종 18) 『식료찬요(食療撰要)』를 찬진(撰進)하였다. 이 책은 세조의 명에 의해서 조선 시대 어의(御醫) 전순의(全循義)가 1460년(세조 6) 11월 편찬한 우리나라 최초의 식이 요법서로서 중풍·감기·천식 등 45가지 질병에 맞는 음식 치료법을 기록하였다.
작물의 한의학적 효능과 식품으로 질병 예방·치료법 등을 자세히 기술하였으며, 음식으로 질병을 치료하는 식료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손순효가 경상 감사로 있을 때 이 책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상주에서 간행하였다. 『고사촬요(攷事撮要)』에 이 책의 양양판과 상주판이 있다는 기록으로 보아, 여러 지역에서 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문집으로 『물재집(勿齋集)』이 있으며, 1726년(영조 2) 간행본과 1876년(고종 13) 간행본이 남아 있다.
[묘소]
묘소는 충청북도 충주시 산척면 송강리 404번지에 있다. 묘소 옆에 신도비가 세워져 있다. 1523년(중종 18) 손순효의 제자 이창신(李昌臣)이 신도비의 비문을 지었고, 이찬(李澯)이 글자를 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