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301352
한자 南道名品道海南美黃寺達摩古道-
영어공식명칭 Namdo Masterwork Road, Haenam Mihwangsa Temple Dharmagodo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북평면|송지면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천기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17년 11월 18일연표보기 - 남도명품길 해남 미황사 달마고도를 찾아서 달마고도 개통식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현산면, 북평면에 걸쳐 있는 달마산에 둘레길이 만들어진 과정과 4개 코스를 걸으며 만나는 풍경.

[태고의 땅으로 떠나는 구도의 길, 달마고도]

달마산은 백두대간에서 시작한 호남정맥이 한반도 최남단 땅끝으로 가기 전 일구어 놓은 산이다. 달마산의 능선은 공룡의 등줄기처럼 울퉁불퉁 솟아있으며, 능선을 따라 오르면 아름다운 완도와 진도의 다도해가 시원스럽게 조망되고, 날씨가 좋은 날은 제주도 한라산까지 보인다. 이러한 빼어난 절경을 지니고 있어 달마산을 예부터 남도의 소금강이라 불렀다.

달마산(達磨山)은 인도의 스님이며 선종의 비조로 불리는 달마대사(達磨大師)의 법신(法身)이 머무는 산으로 알려져 있다. 달마대사와 관련하여 달마산의 산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전한다. 달마산이 위치한 해남군 송지면은 고대부터 해상교역이 활발한 곳이었다. 주위의 수많은 고분과 산성 등에서 교류의 흔적을 찾을 수 있고 그 역사의 흐름 속에서 달마산은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특히 달마산에 자리한 천년고찰 미황사(美黃寺)는 불교의 해로 유입설을 대표하는 전설을 품고 있다. 미황사 사적비에 따르면 통일신라 749년(경덕왕 8)에 처음 미황사를 지었다고 한다. 주춧돌은 앞면 4개와 옆면 2개를 특이하게 연꽃무늬에 자라, 게 따위를 조각한 돌을 사용하였으며 나머지는 자연석을 썼다. 천장은 우물 정(井) 자 모양으로 천장 속을 가리고 있는 형식인데 가운데에 불교어인 ‘범(梵)’을 선명하게 새겨 놓아, 불교가 남방으로 전래되었다는 설을 뒷받침한다.

달마고도(達磨古道)의 출발점도 미황사요, 마지막 종점도 미황사다. 달마고도는 ‘천년의 세월을 품은 태고의 땅으로 낮달을 찾아 떠나는 구도의 길’이며, 미황사에 전해 내려오는 12암자터, 도솔암, 빈대절터, 중암터, 서래암, 상수암 터, 문수암 터, 관음암 터, 미타암 터 등을 연결하는 스님들의 포행(布行) 길이다. 또한 달마고도미황사를 중심으로 주위를 한 바퀴를 두루 순례하는 둘레길이며, 달마산 주변에 사는 12개 마을의 사람들의 삶의 애환이 담긴 옛길을 복원하고 새롭게 개척한 길이다.

[사람의 손길로만 만든 친자연적 길, 달마고도]

달마고도미황사의 주지인 금강이 기획하여 조성한 길이며, 길의 명칭은 금강이 명명하였다. 승려 금강은 미황사도솔암을 오가면서 국토의 최남단 땅끝과 연결되는 땅끝 천년숲 옛길의 한계성을 극복하고, 달마산 중턱 해발고도 220m~380m에 미황사에 전설처럼 내려오는 12암자의 길을 복원하여, 달마산의 생태, 역사, 문화자원과 빼어난 경관을 소재로 한 남도의 대표적인 명품 둘레길을 기획하였다.

달마고도는 2015년 8월부터, 전라남도, 해남군, 미황사, 길 전문가 등이 참여하여 현지답사를 하였다. 달마고도는 포클레인 등의 중장비 사용 없이 삽, 곡괭이, 지게, 망치만을 사용한 순수한 인력만으로 시공하였다. 2019년 2월에는 문바위 아래 미라골잔등-미황사, 북평면 평암리 노지랑골 입구-노지랑골사거리-대밭삼거리-부도암-도시랑골사거리-도솔암의 지선이 완공되었다.

달마고도(達磨古道)의 명칭은 달마대사(達磨大師)의 달마(達磨)에서 고도(古道)의 명칭은 티베트의 유명한 천년고도, 차마고도(茶馬古道)[Tea-Road]에서 명명되었다. 차마고도는 중국의 차[茶]와 티베트의 말[馬]을 교환하기 위해 개통된 교역로로 중국과 티베트, 네팔, 인도를 잇는 육상 무역로였다.

[달마고도 4개 코스를 걸으며 만나는 풍경]

달마고도는 동쪽에서 남서쪽으로 뻗어 내린 달마산의 골짜기의 중앙부를 가로 지르는 구불구불한 모퉁이 길의 연속이다. 달마고도는 달마대사의 법신(法身)[dharma-kāya]이 깃든 길로 일명 달마길[達磨道]이며, 출가길[出家道], 수행길[修行道], 고행길[苦行道], 해탈길[解脫道] 등 4코스로 구성되어 있다. 걷는 사람의 체력에 따라서 약 5시간에서 8시간이 소요된다.

1코스는 미황사–큰바람재 구간으로 태고의 땅을 찾아 큰바람재를 넘는 길로 미황사와 산지습지, 너덜, 암자터, 편백나무 숲, 수정굴 등이 있다. 2코스는 큰바람재–노지랑골사거리 구간으로 문바우골 너머 큰 금샘을 찾아가는 길로 천제단 암자 터, 떡갈나무 고목, 너얼 암자 터, 미타혈, 큰금샘, 작은 금샘 등이 있다. 3코스는 노지랑골사거리-몰고리재 구간으로 하숙골 옛길, 노간주나무 고목, 편백나무 숲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지막 4코스는 몰고리재–인길–미황사 구간으로 천년숲 옛길을 따라 미황사로 가는 길로 몰고리재, 도솔암, 용담굴, 편백나무 숲, 미황사 부도전 등이 있다.

[1코스 출가길, 미황사에서 큰바람재까지]

미황사에서 출가하여 부처님이 되는 길은 엄숙하고 장엄하다. 호흡을 가다듬은 다음 왼쪽 산길로 접어든다. 달마고도는 처음에는 달마산의 등산로와 겹쳐진다. 가파른 산길을 10여 분쯤 동안 걷다 보면 서서히 땀이 배어나기 시작한다. 어느덧 삼거리에 도착하여 왼쪽으로 편하게 걸어가면 산지습지가 보인다. 이름 모를 암자의 샘터에서 흐르는 물이 습지를 만들었는데 산지습지라 한다. 산지습지에서 작은 너덜을 지나 임도로 접어든다. 임도가 옛 정취를 사라지게 하였지만 관음봉이 바로 앞으로 보인다.

제2너덜을 지나면 전나무 숲을 거치게 된다. 이 길은 송지면 마봉리 사람들이 우시장으로 유명한 월송장을 오가던 길이며 이진 사람들이 미황사로 넘어 왔던 재다. 조선시대에는 미황사 승려들과 대흥사 승려들이 교류하던 길이었다. 대흥사의 옛 사지인 『대둔사지』[1823]에는 미황로(美黃路)로 기록되어 있다. 신비스러운 자연의 비경, 너덜겅 두 곳을 지나면 능선으로 오르는 삼거리에 닿는다. 삼거리에서 약 200여m 떨어진 곳, 달마산의 북쪽 능선 암릉 끝자락에 수정굴이 있다. 수정굴은 조선시대 지리지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도 전한다. 수정굴은 방씨라는 성을 가진 가족들이 정유재란 때 피해 살던 곳이라 하여 방가굴이라고도 하며, 한때는 빨치산이 숨어서 활동하였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굴의 천장에서 물이 한 방울씩 떨어지는데, 지금도 물을 머금은 수정이 마치 종유석처럼 자라고 있다. 수정굴 삼거리에서 출가길이 끝나는 큰바람재까지는 불과 5분 거리다.

[2코스, 수행길, 큰바람재에서 노지랑골사거리까지]

바람이 세차게 부는 곳이라 유래한 큰바람재를 지나면 천제단 샘터와 우물이 나오는데 이진(梨津)마을 사람들과 산마마을 사람들이 매년 6월 초하루에 천제를 모시기 위하여 준비한 곳이라고 한다. 샘터에서 서쪽 능선으로 100여m쯤 오르면 천제단 바위가 있다. 천제단 연못에서 생돼지를 잡고, 제주는 샘터의 물을 떠다 목욕재계하고 천제단에서 제사를 모셨다고 한다.

천제단 아래 이진마을은 조선시대에 제주도로 가는 포구였다. 조선 말 명필로 알려진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1786~1856]가 유배를 떠났던 포구로도 유명하다. 제주도에서 수송한 말을 천제단 주변의 산자락에 임시로 방목하였다고 한다. 천제단 주변 산자락에 말을 임시로 방목하였던 흔적인 마몰딱지[매몰딱지]라는 지명도 전한다. 수십 년 묵은 떡갈나무를 지나 터진목에 오르면 왼쪽으로 완도의 상왕봉이 보인다. 멀리 청산도, 소안도, 보길도, 노화도가 보이고, 날씨가 맑은 날은 제주도 한라산이 보인다.

바로 앞으로 문수암 터에 이르면 비경의 소금강이 펼쳐진다. 달마고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코스다. 미황사 주지 금강은 조선시대 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문수암 터[文洙菴址]라 주장한다. 문수암 터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미황사의 북쪽에 문수암 터와 관음굴이 있다. 그 상쾌하고 아름다움이 참으로 속세의 경치가 아니다.”라고 할 정도로 달마고도에서는 가장 비경이다. 문수암 터는 달마산의 동북쪽에 있는 너덜 부근으로 추정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달마산 정상 천길 낭떠러지 아래에 미타혈이 있다. 미타혈에서 100여 보를 남쪽으로 가면 깊이를 알지 못하고, 그물은 짜고, 조수의 흐름을 보이는 신비스러운 방지(方池)가 있다.”라고 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승려 무외의 기행문에 기록된 방지는 아마도 미타암의 샘으로 이용되었을 것이다. 아쉽게도 아직까지도 발견을 허락하지 않았다. 문수너덜과 미타 큰 너덜과 미타 작은 너덜을 지나면 북평면 서홍리에서 미황사로 넘어가는 문바우재삼거리다.

최근 달마고도의 옛길을 복원해 많은 등산객들이 미황사로 넘어가거나 정상으로 오른다. 문바우재에서 모퉁이 길을 따라 걸으면 서쪽 암릉 아래에 작은 금샘이 있다. 작은 금샘은 샘물이 금빛이 난다고 한다. 작은 금샘은 달마산의 능선으로만 걸어야만 맛을 볼 수 있는 신비스러운 샘이다.

[3코스, 고행길, 노지랑골사거리에서 몰고리재 구간까지]

3코스의 들머리는 노지랑골사거리다. 최근 개설한 지선을 따라 오르면 대밭삼거리에서 3개의 봉우리를 넘고 너덜길을 접어들면 노지랑골의 큰 금샘에 도착한다. 큰 금샘은 큰 굴 안에 있는데, 아랫마을 평암 사람들에 의하면 금빛 나는 샘물에 자기 이름도 써서 지웠을 정도로 금빛이 아름다웠다고 한다. 큰 금샘 오르는 길, 지척에 화숫골재가 있다. 화숫골재는 북평면 평암마을 사람들이 미황사장춘리를 넘어 다녔던 재다. 화숫골재에서 약 1㎞쯤 가면 웃골재가 나온다. 웃골재는 북평면 금산마을에서 송지면 마봉리 구석마을로 넘어가는 재다. 웃골재에서 도솔암의 사거리까지는 쉬엄쉬엄 가더라도 약 30여 분이면 도착한다. 도솔암사거리 길을 따라서 영전마을 사람들이 연말, 연초에 도솔암으로 올라 서해로 지는 일몰과 완도 쪽에서 떠오르는 일출을 즐기는 명소로 알려진 곳이다.

달마고도꾼들은 13모퉁이길의 지루함을 견디지 못해 가파른 도솔암을 20분 만에 올라 마봉리 샘터와 미황사로 향하는 삼거리로 하산한다고 한다. 북평면 영전마을 사람들이 송지장을 가려면 반드시 달마산 남쪽의 작은 협곡을 지나야 되는데, 골짜기를 오르내리던 길에 무려 13개의 모퉁이가 있다 하여 13모퉁이길이라 불렀다고 한다. ‘13모퉁이길’은 달마고도에서는 악명이 높고 지루한 길이지만, 중간쯤 가다가 왼쪽을 바라보면 남쪽 멀리 완도의 다도해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통호마을 왼쪽으로 흑일도와 백일도가 보인다. 달마산의 산신령이 바둑을 두었는데 어떤 산신령이 훈수를 두어 성깔에 못 이겨 하얀 돌과 검정 돌을 던져 버려서 하얀 돌은 백일도가 되고 검정 돌은 흑일도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멀리 노화도와 보길도도 보인다. 날씨가 맑은 날은 제주도 한라산이 얼굴을 살짝 내민다. 약 30분 만에 13모퉁이길을 지루하게 지나면, 몰고리재다. 몰고리재는 송지면 통호리 사람들이 소를 몰고 월송장미황사, 마봉리로 넘어 다녔던 재이며, 송지면 산정 사람들이 통호리로 넘어 다니면서 김 공판을 보러 다녔던 재다. 땅끝기맥이 통과하는 갈림목이어서 달마고도꾼과 땅끝기맥꾼들이 잠시 쉬어 가는 곳이다.

[4코스, 해탈길, 몰고리재에서 다시 미황사로]

몰고리재를 넘으면 왼쪽으로 송지면의 넓은 들판이 보이고, 서해 쪽으로 진도가 멋지게 조망된다. 해탈(解脫)이 어려우면 마봉리 작전도로를 통해서 마봉리 샘터로 하산해도 어느 누구도 나무라지 않는다. 본격적인 해탈길은 도솔봉으로 오르는 작전도로를 연결하는 지점에서 시작된다. 미황사까지 약간의 고도 차이는 있어도 쉬엄쉬엄 걸어도 1시간 30분 만에 도착하는 코스다. 미황사에서 도솔암 순례객들이 많이 이용하는 코스다.

마봉리에서 미황사로 향하는 길을 송지면 사람들은 인길이라 부른다. 또한 이 길은 미황사의 창건설화에 등장하는 길이며, 설화에 등장하는 흑우(黑牛)가 불교 경전을 우마차에 싣고 온 길이다. 흑우는 우리나라의 전통소로 알려져 있다. 미황사 사적비(美黃寺事蹟碑)[1692]에 기록된 미황사 창건설화에 따르면 신라 749년(경덕왕 8), 의조화상의 꿈에 “나는 본래 우전국의 왕인데, 여러 나라를 편력하면서 경상 봉안할 곳을 구하였다. 산 정상을 바라보니 일만불(一萬佛)이 다투었으므로 여기에 온 것이다. 마땅히 소에 경을 싣고 소가 누워 일어나지 않은 곳에 안치하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몰고리재에서 약 30여 분쯤 걷다 보면 도솔암삼거리에 닿는다. 삼거리에서 약 20여 분 오르면 도솔암(兜率庵)이다. 도솔암은 해남에서는 가장 오래된 암자 터라고 전해지며, 조선시대 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그 땅의 끝 편에 도솔암이 있는데, 암자가 앉은 형세가 빼어나서 그 장관이 따를 만한 짝이 없다. 화엄조사 의상대사(義湘大師)가 터를 잡은 곳이다. 그 암자 북쪽에 서굴(西窟)이 있는데, 신라 때 의조화상(義照和尙)이 처음 살면서 낙일관(落日觀)을 닦은[修] 곳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석 자 석 치의 나막신을 신은 거인이 축대를 쌓아 지었다는 전설도 내려온다.

도솔암 절벽 아래에 용굴[서굴]이 있는데 7년간 가뭄에도 마르지 않으며 용이 승천하였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도솔암삼거리에서 약 25분쯤 걸으면 웃골재에 닿는다. 웃골재는 송지면 마봉리 구석의 작은 마을에서 북평면 금산으로 넘어가는 재다. 해남군 송지면 마봉리 사람들과 북평면 금산 사람들은 유난히도 사돈지간이 많았다고 한다. 달마산에 진달래가 만발하던 시절 두 마을의 청춘남녀들은 이 산을 오르면서 사랑을 속삭였을 것이다.

웃골재를 갈림목에서 20여 분 북쪽으로 올라가면 화숫골재에 닿는다. 북평면 평암 사람들이 미황사로 넘어 다녔던 재다. 바로 앞에는 장춘너덜이 있다. 장춘너덜은 미황사의 템플스테이객들이 아침 일찍 편평한 너널겅에서 수행(修行)을 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장춘너덜은 4코스 중에서는 가장 풍경이 빼어난 코스이다. 멀리 진도가 보이고, 서해의 진도 쪽으로 일몰이 아름다운 곳이다.

4코스 마지막 구간은 미황사의 부도암에 있는 동부도전과 서부도전을 거친다. 부도전은 미황사에 상주하면서 입적하였던 승려들의 부도가 있으며, 땅속 깊이 묻힌 미황사 사적비가 서 있는 곳이다. 바닷가 인근에 위치한 미황사는 수륙재가 성행하였다고 한다. 부도전의 부도 조각에는 수륙재와 관련된 물고기와 동물들이 조각들이 조각되어 있다. 10여분쯤 한가롭게 숲속 길을 걷다보면 미황사에 닿는다. 드디어 해탈(解脫)의 순간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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