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읍 명당 민의관 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301255
한자 海南邑明堂閔議官-
영어공식명칭 Haenameup Myeongdang Minuigwan Teo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한은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2017년 01월 17일 - 「해남읍 명당 민의관 터」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수성리 105에 위치한 해남향교 내 사무실에서 박봉두에게 채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2017년 - 「해남읍 명당 민의관 터」 해남군에서 펴낸 『설화로 꽃피는 땅끝해남』 상권에 수록
관련 지명 미암아파트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해리 572 지도보기
채록지 해남향교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향교길 21[수성리 105]지도보기
성격 자연 전설
주요 등장 인물 민경호|민의관|이재량
모티프 유형 양택풍수|명당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해리에 있는 민의관의 집터와 관련하여 전해 오는 이야기.

[개설]

「해남읍 명당 민의관 터」는 일제강점기 해남을 대표하는 만석꾼 중 한 명인 민의관의 집터가 명당이었다는 이야기이다.

[채록/수집 상황]

「해남읍 명당 민의관 터」는 2017년 1월 17일 해남군 해남읍 수성리 105에 위치한 해남향교 내 사무실에서 채록하였으며, 구술자는 박봉두[남]이다. 2017년 해남군에서 편찬한 『설화로 꽃피는 땅끝해남』 상권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일제강점기 해남에서 가장 큰 부자로 알려진 사람은 해남군 해남읍 해리에 거주하던 민경호(閔京鎬)[1863~1931]와 해남군 황산면 우항리에 살았던 이재량(李載亮)[1857~1938]이다. 민경호의 벼슬은 중추원의관내부주사(中樞院議官內部主事)였다. 의관이 아닌 주사였지만 해남 주민들은 그를 ‘민 의관’이라 불렀다. 해남 주민들이 ‘아흔아홉 골목 물’이라 부를 정도로 금강산의 물은 맑고 깨끗하였는데, 금강산의 깨끗한 물이 해남읍을 중심으로 하여 해리로 흘러든다. 예부터 해리 주민들은 해리를 해남읍의 발상지로 여겼으며, 해남5현(海南五賢)을 배출하였을 정도로 해리의 터가 좋다고 인식하고 있다. 현재 해리에 지어진 미암아파트의 터는 민의관이라 불렸던 만석꾼 민경호의 집터였는데, 민의관 터는 해남 제일의 명당지라고 한다.

[모티프 분석]

「해남읍 명당 민의관 터」의 모티프는 ‘양택풍수’, ‘명당’ 등이다. 풍수설화는 크게 ‘음택풍수설화’와 ‘양택풍수설화’로 구분된다. 음택풍수설화는 개인의 묏자리와 관련된 설화이며, 양택풍수설화는 개인의 주거지인 집터와 관련된 설화이다. 「해남읍 명당 민의관 터」는 개인의 집터와 관련된 ‘양택풍수설화’와 마을 형성에 관한 설화인 ‘양기풍수설화’가 결합된 이야기이다. ‘금강산의 물은 깨끗한 물-금강산 물이 해남읍으로 흐름-해남읍으로 흐르는 금강산 물이 해리로 이어짐-따라서 해리는 명당-해리에 위치한 민의관의 집터도 명당’의 구조로 진행된다. 해리 주민들은 ‘금강산 물은 깨끗한 물이고 금강산 물이 해남읍 해리로 흐르기 때문에 해리의 터는 매우 좋으며, 해리에 자리 잡은 민의관의 터는 명당’이라는 단순하지만 명확한 이유를 근거로 제시하여 해리가 살기 좋은 마을임을 강조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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