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천 임억령과 임백령」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301252
한자 石川林億齡-林百齡
영어공식명칭 Seokcheon Imeokryeong and Imbaekryeong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시대 조선/조선 전기,현대/현대
집필자 한은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2017년 01월 05일 - 「석천 임억령과 임백령」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성내리 80-5 해남문화원 문화사랑방에서 민부삼에게 채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2017년 - 「석천 임억령과 임백령」 해남군에서 펴낸 『설화로 꽃피는 땅끝해남』 상권에 수록
관련 지명 석천 임억령 묘소 - 전라남도 해남군 마산면 장촌리 지도보기
채록지 해남문화원 문화사랑방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성내리 80-5 지도보기
성격 인물담
주요 등장 인물 임억령|임백령|박상
모티프 유형 천재|인과응보|권선징악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임억령과 관련하여 전해 오는 이야기.

[개설]

「석천 임억령과 임백령」은 해남 출신이자 조선 시대의 문신인 석천(石川) 임억령(林億齡)[1496~1568]과 괴마(槐馬) 임백령(林百齡)[1498~1546]은 피를 나눈 형제이지만 정치적으로는 뜻을 달리하였다는 이야기이다.

[채록/수집 상황]

「석천 임억령과 임백령」은 2017년 1월 5일 해남군 해남읍 성내리 80-5 해남문화원 문화사랑방에서 채록하였으며, 구술자는 민부삼[남]이다. 2017년 해남군에서 펴낸 『설화로 꽃피는 땅끝해남』 상권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석천 임억령은 1496년에 해남에서 태어났다. 임억령의 아버지는 임우형(林遇亨)이며, 어머니는 박자회(朴子回)의 딸 음성박씨이다. 임우형과 음성박씨에게는 다섯 명의 자녀가 있었는데, 셋째가 임억령, 넷째가 임백령, 다섯째가 임구령(林九齡)이다. 임억령임백령은 어려서부터 머리가 좋았다. 그래서 부모는 임억령임백령을 눌재(訥齋) 박상(朴祥)[1474~1530]에게 보내 학문을 익히도록 하였다. 박상은 임억령임백령의 천재성을 알아보고 문학적 소질이 있는 임억령에게는 『장자(莊子)』를, 정치에 소질이 있는 임백령에게는 『논어(論語)』를 가르쳤다.

나중에 임백령은 을사사화(乙巳士禍)[1545]에 가담하여 대윤(大尹) 일파의 많은 선비들을 추방하였다. 을사사화의 성공으로 일등 공신이 된 임백령은 사화와 전혀 관련 없는 자신의 형 임억령을 공신으로 추대하여 녹권(錄券)[공훈을 새긴 쇠로 만든 패]을 보냈다. 녹권을 받은 임억령은 화를 내면서 녹권을 불태워 버린 후 벼슬을 버리고 해남으로 낙향하고자 하였다. 임백령이 떠나려는 형을 만류하였지만, 임억령은 동생에게 풍랑을 일으키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해남으로 내려와 은거하였다.

해남으로 내려온 임억령은 제자를 가르치며, 2,000수가 넘는 시를 남겼다. 많은 벼슬아치들이 귀양을 갔지만 임억령은 한 번도 귀양을 가지 않고 편안하게 여생을 마쳤다. 하지만 동생 임백령은 명나라 사신으로 다녀오다가 병을 얻어 죽었으며, 사후에 관작이 추탈되었다.

[모티프 분석]

「석천 임억령과 임백령」의 모티프는 ‘천재’, ‘인과응보’, ‘권선징악’ 등이다. 임억령임백령은 피를 나눈 친형제이다. 임억령임백령은 모두 천재성을 지니고 있었지만 각자의 선택에 의하여 다른 최후를 맞게 된다. 정치적 욕망 때문에 을사사화를 일으켜 많은 사람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임백령은 병을 얻어 제명을 다하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사후에 관작이 추탈되었다. 하지만 을사사화의 부당함을 주장하며 해남으로 낙향한 임억령은 제자를 가르치며 천수를 누렸다. 「석천 임억령과 임백령」은 역사적 인물을 대상으로 한 이야기이다. 한 형제이지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면 벌을 받아 단명하고, 피해를 주지 않고 순박하게 살면 편안한 노후를 맞는다는 해남 주민들의 교훈적 윤리관을 반영한 설화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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