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300932
한자 龍岩里恤民頌德碑群
영어공식명칭 Yongamri Hyulminsongdeokbigun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용암리 원문마을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수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884년 9월연표보기 - 용암리 휼민송덕비군 순찰사 김성근 비 건립
건립 시기/일시 1884년 9월연표보기 - 용암리 휼민송덕비군 수상국 민경호 비 건립
현 소재지 용암리 휼민송덕비군 - 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용암리 원문마을 지도보기
성격 비|휼민송덕비군
양식 석비
관련 인물 김성근|민경호
재질 석재
크기(높이, 너비, 두께) 135㎝[순찰사 김성근 비 높이]|51㎝[순찰사 김성근 비 너비]|19㎝[순찰사 김성근 비 두께]|137㎝[수상국 민경호 비 높이]|49㎝[수상국 민경호 비 너비]|19㎝[수상국 민경호 비 두께]
소유자 해남군
관리자 해남군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용암리에 있는 조선 후기 순찰사 김성근과 수상국 민경호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세운 2기의 비.

[개설]

용암리 휼민송덕비군(龍岩里恤民頌德碑群)은 전라도순찰사 및 수사로 조선 후기 해남에서 활동한 김성근(金聲根), 민경호(閔敬鎬)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1883년(고종 20) 1월 11일[계사]조에 “김성근(金聲根)을 전라도 관찰사(全羅道觀察使)로 삼았다.”라는 기록이 있는데, 김성근이 전라도 관찰사로 있을 때 순찰하면서 구휼한 것을 기려 송덕비를 세운 것으로 보인다. 송덕비의 갑신년은 부임 이듬해인 1884년(고종 21)으로 보이는데, 재임 중에 송덕비를 세운 것으로 보인다. 김성근의 송덕비를 세운 뒤의 기록이기는 하지만, 김성근은 전라도 관찰사로 재임하면서 법성창에서 호조나 선혜청에 납부할 곡식을 3년이나 못낸 것을 10년 기한으로 나누어 내도록 건의하였다. 이에 대해서 의정부에서는 5년에 거쳐 나누어 내도록 아뢰자 윤허하였다는 기록이 있다[『고종실록』 고종 22년(1885) 2월 9일(기묘)]. 이처럼 순찰 현장에서 어려운 사회 사정을 해결해 주려는 노력에 대하여 송덕비를 세운 것으로 보인다. 비석의 명문으로 보면 흉년이 들었을 때 구휼한 공적을 기린 것으로 보인다. 수상국은 전라우도수군절도사를 이르며, 김성근 순찰사의 송덕비를 세운 때와 시기나 구휼의 내용이 같을 것으로 보인다.

[건립 경위]

용암리 휼민송덕비군은 전라도순찰사 김성근, 수상국 민경호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1884년 건립되었다. 비의 건립 주체는 알 수 없다.

[위치]

용암리 휼민송덕비군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용암리 원문마을 민가 사이의 길가에 있다.

[형태]

용암리 휼민송덕비군은 조선 후기에 세운 것으로 2기 모두 비신과 비갓을 갖추고 있다. 순찰사 김성근 비는 좌대 위에 비몸을 세웠으며, 비의 머리는 한옥 지붕형이다. 비의 재질은 돌이며, 크기는 높이 135㎝, 너비 51㎝, 두께 19㎝이다. 수상국 민경호 비는 좌대 위에 비몸을 세웠으며, 비의 머리는 한옥 지붕형이다. 비의 재질은 돌이며, 크기는 높이 137㎝, 너비 49㎝, 두께 19㎝이다.

[금석문]

용암리 휼민송덕비군 중 순찰사 김성근[재임 기간 1883~1884] 비는 앞면 가운데에 ‘순찰사김공성근휼민송덕비(巡察使金公聲根恤民頌德碑)’라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뒷면에 ‘갑신구월 일(甲申九月 日)’이라 연기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김성근의 재임 기간을 고려하면 갑신년은 1884년(고종 21)이므로 1884년 9월 세웠음을 알 수 있다. 수상국 민경호[재임 기간 1883년 5월~1884년 5월] 비는 앞면 가운데에 ‘수상국민공경호휼민송덕비(水相國閔公敬鎬恤民頌德碑)’라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뒷면에 ‘갑신구월 일(甲申 九月 日)’이라 연기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민경호의 재임 기간을 고려하면 갑신년은 1884년(고종 21)이므로 1884년 9월 세웠음을 알 수 있다.

[현황]

용암리 휼민송덕비군해남군 문내면 용암리 원문마을 민가 사이의 길가에 있는데 휼민송덕비 2기의 중 일부는 글자는 떨어져 나가 판독하기 어렵다. 마을과 떨어져 세워져 있는 비석으로 보호 관리가 필요하다. 최근에 파괴된 비석이 제 모양을 갖추었으나, 비석 주변의 정비와 함께 문화재 안내판 설치도 필요하다.

[의의와 평가]

용암리 휼민송덕비군은 조선 후기 해남 우수영과 관련된 원문마을 입구에 자리하고 있어 원문성(轅門城)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자료로 평가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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