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300723
한자 朱奉玉
영어공식명칭 Ju Bongok
이칭/별칭 주봉윤(朱鳳胤)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최성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02년 08월 02일연표보기 - 주봉옥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20년 4월 - 주봉옥 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독립 만세 운동 참가
몰년 시기/일시 1964년 11월 11일연표보기 - 주봉옥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5년연표보기 - 주봉옥 대통령 표창 수훈
출생지 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동외리 1092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동외리 1092
학교|수학지 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지도보기
활동지 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지도보기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묘역 제3-21호 - 대전광역시 유성구 현충원로 251[갑동 3]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1919년 문내면 독립 만세 운동 참가

[정의]

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1902년 8월 2일 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동외리에서 태어난 주봉옥(朱奉玉)[1902~1964]은 1920년 문내면에서 발생한 독립 만세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주봉옥주봉윤(朱鳳胤)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졌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난 후 전국 각지에서 지속적으로 독립 만세 운동이 전개되었고, 해남군의 경우 1919년 4월 6일 해남면에서 해남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의 주도로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났다. 조선시대 수군절도사영이 있었으며 1597년 명량대첩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어 주민들의 항일의식이 강했던 우수영(右水營)에서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나지 못한 점을 안타깝게 여기고 있던 주봉옥은 1920년 4월 21일 우수영보통학교의 운동회가 열리던 날 임동수(林東秀)의 집에서 윤인섭(尹仁燮)·최이규(崔伊奎)·박규성(朴圭星)·박용문(朴用文)·이준섭(李俊燮) 등과 함께 독립 만세 시위 계획을 세우는 한편, ‘독립 만세 지원자 성명표’를 만들어 연명으로 도장을 찍고 결의를 다졌다.

1920년 4월 22일 오후 동외리 성벽 밖에서 태극기 3개를 만들어 윤인섭·전유봉·이준섭이 하나씩 나눠 들고 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학생들과 함께 우수영 읍내로 행진하였다. 이들이 행진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우수영보통학교 교사인 장지훈(張志勳)·이우섭(李雨燮)이 달려와 만류하며 태극기를 빼앗고 시위를 제지하였으며 일부가 일본 경찰에 연행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이상순(李尙順)·김종호(金宗浩)·양성룡(梁成龍)·주영철(朱永澈) 등 동외리 유지들이 유치된 윤인섭·전유봉 등의 석방을 요구하였지만 관철되지 않자 이에 항의하기 위해 1920년 4월 23일 또다시 독립 만세 운동이 전개되었다. 오후 7시경에 선두리 선창가로 군중들이 모였고, 이때 주봉옥을 비롯한 보통학교 학생들도 다시 합류하여 만세 시위 행진을 벌였다.

주봉옥은 이 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20년 5월 13일 광주지방법원 장흥지청에서 3·1운동 직후 독립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제정한 대정8년 제령 제7호 위반으로 징역 4월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주봉옥은 1964년 11월 11일 사망하였다.

[묘소]

주봉옥의 묘소는 대전광역시 유성구 갑동 3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묘역 제3-21호에 있다.

[상훈과 추모]

1995년 대한민국 정부는 주봉옥의 공적을 기려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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