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암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300674
한자 金巖于
영어공식명칭 Kim Amwoo
이칭/별칭 김영식(金泳植)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전라남도 해남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최성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19년 12월 23일연표보기 - 김암우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33년 5월 - 김암우 전남운동협의회 가입
활동 시기/일시 1936년 - 김암우 전남운동협의회 사건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
몰년 시기/일시 1967년 11월 03일연표보기 - 김암우 사망
출생지 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이진리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이진리 지도보기
활동지 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이진리 지도보기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제2묘역 303 - 대전광역시 유성구 현충원로 251[갑동 3]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전남운동협의회 회원

[정의]

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김암우(金巖于)[1919~1967]는 1919년 12월 23일 해남군 북평면 이진리에서 태어났다. 전남운동협의회(全南運動協議會)에 가입하여 항일운동을 전개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활동 사항]

김암우는 1933년 5월 해남군에 전남운동협의회가 조직되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전남운동협의회는 혁명적 농민 조합을 결성하여 계급의식을 고취하고 지역 전위 정치조직의 기반을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결성된 항일 단체였다. 해남 출신 김홍배(金洪培), 완도 출신 황동윤(黃同允) 등이 각자 자기 지역에서 활동하다가 농민운동을 중심으로 한 대중운동 지도 기관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결성된 후 여러 지역으로 확대되었다. 전남운동협의회는 사무부(事務部)·조직부(組織部)·조사부(調査部)·구원부(救援部) 등의 조직을 갖추고, 기관지인 『농민투쟁(農民鬪爭)』을 발간하였다.

김암우는 이 시기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던 해태어업조합원(海苔漁業組合員)에 대한 저금 환불 문제(貯金還拂問題)와 풍수해(風水害)로 인한 농작물 감수(減收)에 따른 소작료 감면을 목표로 소작쟁의를 일으킬 것을 계획하는 등 항일 활동을 하였다. 이후 전남운동협의회 조직이 노출되고 일제의 탄압이 시작되자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36년 12월 28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김암우는 1967년 11월 3일 사망하였다.

[묘소]

김암우의 묘소는 대전광역시 유성구 갑동 3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제2묘역 303에 있다.

[상훈과 추모]

1993년 대한민국 정부는 김암우의 공적을 기려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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