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300658
한자 曹錫昌
영어공식명칭 Jo Seokchang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학동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수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추모 시기/일시 1863년 - 조석창 효자각 건립
추모 시기/일시 1912년 - 조석창 재실 감시재(感時齋) 건립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11년 07월 06일 - 조석창 ‘문내 효자 조석창 감응비각’ 해남군 향토유적 제21호로 지정
사당|배향지 문내 효자 조석창 감응비각 - 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학동리 지도보기
사당|배향지 감시재(感時齋) - 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학동리 지도보기
성격 효자
성별
본관 창녕(昌寧)

[정의]

조선 후기 해남 출신의 효자.

[가계]

조석창(曹錫昌)[?~?]의 본관은 창녕(昌寧)이며, 그 외 자세한 가계는 전하지 않는다.

[활동 사항]

조석창은 부모에게 효성이 지극하였을 뿐 아니라 부모가 죽은 뒤에는 묘 앞에서 3년간 시묘살이를 하였다. 어느 날 조석창은 조상의 묘장(卯杖)[정월의 첫 묘일(卯日)에 부정을 방지하는 주술 도구로서 이용된 막대기]을 만들어 옥매산으로 운반하던 도중에 풍랑을 만나 싣고 가던 묘갈(墓碣)[무덤 앞에 세우는 둥그스름한 작은 비석]을 바다에 빠뜨렸다. 이에 목욕재계하고 정성으로 기도하니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신령이 꿈에 나타나 “갈퀴로 바닷속을 긁으면 묘갈의 위치를 알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조석창은 신령의 말대로 하여 묘갈을 찾아 무덤 앞에 세웠다고 한다.

이를 전해들은 지역 유생들이 조석창의 효행을 조정에 상소하였고, 예조에서는 1863년(철종 14) 조석창에게 효자 정려를 내리고 포상하였다.

[상훈과 추모]

문내면 학동리 마을회관을 돌아 소로를 따라가면 ‘문내 효자 조석창 감응비각(門內孝子曹錫昌感應碑閣)’과 1912년에 건립된 재실인 감시재(感時齋)가 있다. 문내 효자 조석창 감응비각은 정면, 측면 각 1칸 규모의 팔작지붕 형태이며, 내부에는 정건조가 찬한 시효비와 「예조입안」 등을 판각한 편액 4개가 걸려 있다. 비각 옆에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감시재가 있으며, 내부에는 조석창이 쓴 「자계서」 등 5개의 편액이 걸려 있다.

문내 효자 조석창 감응비각은 창녕조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으나 관리가 소홀하여 훼손이 심한 편이다. 2011년 7월 6일 해남군 향토유적 제21호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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