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300621
한자 閔仲騫
영어공식명칭 Min Joonggun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전라남도 해남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정윤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447년연표보기 - 민중건 출생
거주|이주지 전라도 해남군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지도보기
활동지 전라도 해남군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지도보기
묘소 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 일신리 - 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 일신리 지도보기
성격
성별 문신
본관 여흥

[정의]

조선 전기 해남 지역에 처음 들어온 여흥민씨 입향조.

[개설]

민중건(閔仲騫)[1447~?]은 계유정난(癸酉靖難)으로 인해 해남에 피난하였다가 정착한 여흥민씨(驪興閔氏) 해남 입향조이다. 이후 여흥민씨는 해남 지역의 유력한 가문으로 성장하였다.

[가계]

민중건의 할아버지는 이조판서를 지낸 민신(閔伸)이며, 아버지는 민보창(閔甫昌)이다. 민신과 그의 아들들인 민보창, 민보해(閔甫諧)·민보석(閔甫釋)·민보흥(閔甫興)은 계유정난 때 함께 희생되었다. 부인은 정문필(鄭文弼)의 딸 해남정씨(海南鄭氏)이며, 아들은 선무랑 민오(閔鰲), 헌릉참봉 민구(閔龜)이다.

[활동 사항]

민중건은 1453년(단종 1) 계유정난 때 할아버지 민신과 아버지와 숙부들이 참형을 당하자 종의 등에 업혀 외삼촌인 진도군수 김종에게 내려왔다고 한다. 옛 진도 땅이었던 삼산면에서 자란 민중건해남정씨의 정문필의 사위가 되어 해남읍 해리로 이주하였고, 이후 후손들이 마산면 화내리로 터전을 옮겼다.

민중건은 1549년 해남향교 대성전 중수 때 이억과 더불어 대성전 중수의 실질적인 책임자인 감역을 담당하였다. 이러한 활동은 민중건의 자식 대에도 이어져 1610년부터 이듬해까지 이루어진 명륜당, 대성전 중수 시에도 여흥민씨가 감역과 장의, 그리고 집사까지 담당하였다. 이는 여흥민씨가 16세기 중엽부터 17세기 전반까지 해남향교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재지사족으로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한 것으로 보이며, 이후 오늘날까지도 지역 사회에서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묘소]

민중건의 묘소는 해남군 황산면 일신리여흥민씨 문중 묘역에 있다.

[상훈과 추모]

해남군 마산면 장촌리 해남 여흥민씨 부조묘에는 민신, 민보창, 민보해, 민보석 등 여흥민씨 4부자가 배향되어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1.01.20 내용 수정 가계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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