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군황일면호적』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300568
한자 海南郡黃一面戶籍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조광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편찬 시기/일시 1899년연표보기 - 『해남군황일면호적』 편찬
소장처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신림동 산56-1]
간행처 해남군 - 전라남도 해남군
성격 전적
편자 해남군
권책 1책
규격 28.4㎝[가로]|24.8㎝[세로]

[정의]

개항기 해남군에서 작성한 황일면[지금의 황산면]의 호적.

[개설]

황일면(黃一面)은 조선 후기 면리제가 시행되면서 해남현에 속한 여러 면 중 하나였다. 1896년(고종 33)의 전국적인 행정 개편과 함께 해남현이 해남군으로 승격되면서 황일면은 황원면으로 개칭되었다. 현재는 행정구역상 황산면(黃山面)이다. 조선시대에는 부세 수취를 목적으로 3년에 한 번씩 호구조사를 하였으며, 관부마다 호적대장을 비치해 두었다. 1897년(광무 1)에 칙령 61호를 반포해 호적제도가 바뀌고 호적 작성 방식이 바뀌었다. 『해남군황일면호적』의 경우도 새롭게 바뀐 호적 양식에 따라 작성되었다.

[저자]

『해남군황일면호적』은 1899년(광무 3) 해남군이 작성하였다.

[편찬/간행 경위]

『해남군황일면호적』은 해남군에서 황일면의 호구를 조사하기 위해 작성하였다.

[형태/서지]

『해남군황일면호적』은 1책 520장이며, 필사본이다. 크기는 가로 28.4㎝, 세로 24.8㎝이다.

[구성/내용]

『해남군황일면호적』에는 양정리(良汀里), 내동(內洞), 남동(南洞), 학동(鶴洞), 남하리(南下里), 명양리(鳴洋里), 동외리(東外里), 장대리(壯大里), 목삼리(木三里), 삼덕리(三德里), 남교리(四郊里), 원동리(院洞里), 용암리(龍巖里), 원문리(元門里), 원문리(轅門里), 남외리(南外里), 서하리(西下里), 서외리(西外里), 삼정리(三丁里), 동내리(東內里), 서상리(西上里), 남상리(南上里)에 있는 520호의 호구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당시 사 호적표(戶籍表)의 기재 내용을 그대로 모아 놓은 것이다. 호적표에는 호주(戶主)의 연령·본관·직업 및 전 거주지, 사조(四祖)[본인 위로 4대 조상], 동거 친속 이외의 원적(原籍)이 없는 남의 집에 붙어사는 사람의 수, 고용자의 수, 가택의 유무 및 초가집·기와집의 칸수 등을 기재하였다.

[의의와 평가]

『해남군황일면호적』은 1896년 이후 바뀐 근대식 호적제도와 ‘호구조사 규칙(戶口調査規則)’에 따라 작성된 호적표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 황산면, 『황산면지』(해남신문사, 2007)
  • 『해남군지』중(해남군지편찬위원회, 2015)
  • 『해남군지』자료집(해남군지편찬위원회, 2015)
  •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http://e-kyujanggak.snu.ac.kr)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encykorea.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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