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300532
한자 海南珍山里靑磁窯址
영어공식명칭 Haenam Jinsalli Cheongja Kiln Site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 진산리 136|초송리
시대 고려/고려 전기
집필자 변남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84년 - 해남 진산리 청자 요지 발굴 조사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84년연표보기 - 해남 진산리 청자 요지 유물 출토
문화재 지정 일시 1985년 1월 4일연표보기 - 해남 진산리 청자 요지 사적 제310호로 지정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18년 7월 - 해남 진산리 청자 요지 발굴 조사 재개
관련 사항 시기/일시 2018년 - 해남 진산리 청자 요지 두 기의 가마 발굴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해남 진산리 청자 요지 사적으로 재지정
소재지 해남 진산리 청자 요지 - 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 진산리 136|초송리지도보기
성격 청자 요지
지정 면적 13,304㎡[100여 개]
소유자 국유|사유
문화재 지정 번호 사적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 진산리초송리에 분포한 고려시대 청자 가마터.

[개설]

해남 진산리 청자 요지(海南珍山里靑磁窯址)는 원래 바다와 접해 있는 길게 뻗은 반도 형태로 가마는 바닷가 낮은 구릉 지대에 100여 기가 분포한다. 1985년 1월 4일 사적 제310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사적으로 재지정되었다. 현재는 영산강 개발 사업으로 개간되어 유적 환경이 완전히 바뀌어 있다. 출토 유물은 대량의 철화청자를 비롯한 청자와 경질도기, 연질도기 등의 도자기류와 갑발과 도지미 등의 요도구들이 확인되고 있다. 해남군 산이면에서 생산된 청자는 1984년 완도 어두리 앞바다에서 3만여 점이 인양되었고, 2003년 군산 십이동파도 인근에서 8,000여 점이 인양되었다. 당시 청자는 관청과 지방 등의 수요를 위해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위치]

해남 진산리 청자 요지해남군 산이면 진산리 136 일대와 초송리에 걸쳐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해남 진산리 청자 요지는 1983년 중학생[산이중학교 김태균]의 신고로 『광주일보』에 나오면서 알려졌다. 이후 개인 연구자인 광주 무등도요 대표 조기정에 의하여 지표 조사가 시작되었다. 1984년 조사 결과 해남군 산이면 진산리초송리 해안 6㎞에서 100여 기의 가마터 흔적이 발견되었다. 해남 진산리 청자 요지는 지표 조사 결과 방대한 규모와 가치가 중대하다고 인정되어 1985년 1월 4일 국가 사적 제310호로 지정되었다. 2001년 간척지 개답 공사에서 가마터를 보호하기 위하여 추가 지표 조사가 이루어지고 가마터 흔적이 있는 해안은 개답 공사에서 제외하여 보존하였다.

1991년 17호 요지에 대한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2018년 7월 진산리 청자 발생과 화원면 신덕리 초기 청자와의 관계를 밝히고, 해남 지역 청자 가마터의 유네스코 문화유산 지정을 위한 학술적인 전거를 마련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적 1지구에 대한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발굴 결과 산이면 청자를 생산할 무렵에 만들어진 두 기의 가마가 중첩되어 발견되었다. 두 기의 가마는 축조 시대가 달랐는데, 앞선 시기 가마는 자연 경사면을 판 다음 진흙으로 만든 반지하식 오름 진흙 가마 구조로 규모는 너비 1.2m이다. 이후 가마는 앞선 가마에서 40~60㎝ 높여 새롭게 축조하였다. 잔존 규모는 길이 9m, 너비 130~140㎝이다. 퇴적층은 가마의 동서쪽에 최대 170㎝ 가량 퇴적되어 있었다. 유물은 대접류와 접시류와 같은 일상 용기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이외에 차를 마실 때 사용하던 완이 출토되었다.

[현황]

해남 진산리 청자 요지는 처음 발견되었을 당시는 바다였으나 1995년 금호호 제방으로 인하여 간척되었다. 해안은 간척지 개발사업과 경작지화하면서 농로와 수로, 웅덩이 조성 등으로 가마터 유적은 지속적으로 훼손되었다. 더불어 자연재해 등으로 유적의 주변 환경이 매우 열악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의의와 평가]

철화청자를 대량 생산하였던 청자 가마는 국내에서 해남 진산리 청자 요지가 유일하고 보기 드물게 대규모로 조성하여 대량 생산한 청자는 전국으로 뱃길을 통하여 공급하였다. 따라서 해남 진산리 청자 요지는 일찍부터 도자의 쓰임과 유통, 가마 구조 등을 파악하는 데 매우 중요한 유적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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