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300526
한자 海南尹善道遺蹟
영어공식명칭 Haenam Yoonseondo Yujeok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 구시리 산181 외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희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조선시대 - 해남 윤선도 유적 건립
문화재 지정 일시 2001년 8월 17일연표보기 - 해남 윤선도 유적 사적 제432로 지정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15년 - 해남 윤선도 유적 마한문화연구원에서 발굴 조사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해남 윤선도 유적 사적으로 재지정
소재지 해남 윤선도 유적 - 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 구시리 산181지도보기
성격 유적
지정 면적 149,402㎡
소유자 해남윤씨고산공파종중
관리자 해남윤씨고산공파종중
문화재 지정 번호 사적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 구시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윤선도가 머물렀던 유적지.

[개설]

해남 윤선도 유적(海南尹善道遺蹟)은 조선 후기 문신이자 시인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1587~1671]가 1642년(인조 18) 54세 때 전라남도 해남군 금쇄동과 수정동, 문소동의 첩첩산중에 머물면서 자연을 이용해 연못과 정자 등을 조영한 조선시대 대표적인 별서 원림 지구이다.

[변천]

윤선도는 1642년 금쇄동, 수정동, 문소동 등에 연못과 정자등을 조영해 강학과 저술을 하였다. 해남 윤선도 유적은 2001년 8월 17일 사적 제432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사적으로 재지정되었다.

[위치]

해남 윤선도 유적해남군 현산면 구시리 병풍산을 중심으로 형성된 높은 산자락 속에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해남 윤선도 유적은 2015년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재단법인 마한문화연구원에서 해남군과 계약하여 발굴 조사를 하였다. 교의재, 회심당, 연지, 휘수정 등 건물 터가 발굴을 통해서 모습을 드러냈다.

[현황]

해남 윤선도 유적 중 금쇄동은 고산분지형의 병풍산 정상으로 산성의 동북쪽은 윤선도가 『금쇄동기(金鎖洞記)』에서 22개의 비경을 노래한 지명과 어울려 아름다운 경관을 보여 준다. 기록에 따르면 금쇄동 원림 공간 구성은 양몽와(養蒙窩), 회심당(會心堂), 불훤료(不喧寮), 휘수정(揮水亭), 교의재(敎義齋) 등의 건물과 인공으로 만들어진 연못에 물을 공급하는 석천(石泉), 물이 폭포를 만드는 석병 등 자연 및 인공 구조물로 구성되었다. 해남 윤선도 유적은 2015년 발굴 조사를 통해 윤선도가 살았던 금쇄동 생활을 알 수 있는 건물 터들이 확인되었다. 기록에서 알려진 교의재, 회심당, 연지, 휘수정 등 건물 터는 그대로 모습을 드러냈다. 교의재는 윤선도가 제자나 자제들에게 강학하는 장소로 쓰던 곳으로 발굴 조사 결과 온돌 구조가 그대로 드러나 난방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촘촘한 석축열과 하부로 향하는 온돌의 연기 배출구는 매우 독특한 경우로 평가된다. 회심당은 윤선도가 주로 거처하였던 공간으로 기와지붕의 집으로 주춧돌을 비롯해 온돌 구조 석축열이 확인되었다. 이와 함께 금쇄동의 비경 가운데 가장 뛰어난 곳으로 알려진 휘수정 발굴 조사에서도 모습이 확연이 드러나 정자를 짓고 비경 속에서 자연을 감상하며 지냈던 윤선도의 당시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윤선도는 금쇄동에 은둔처를 정하고 『금쇄동기』, 『산중신곡(山中新曲)』 등의 문학 작품을 저술하였다. 해남 윤선도 유적에는 고려시대에 쌓은 것으로 보이는 성터 유적도 함께 있다.

[의의와 평가]

해남 윤선도 유적해남윤씨 고산 윤선도의 시문학 창작의 산실 별서 원림으로, 해남 지역이 시가 문학의 명소가 되는 데 있어 역사적 가치가 큰 유적이다. 또한 해남의 인문 학술 활동의 중심으로서 의미가 크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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