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300501
한자 花源鄭御史鐵碑
영어공식명칭 Hwawon Iron Monument of Royal Inspector Jeong
이칭/별칭 정만석 영세불망비,정만석어사비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금평길 14[금평리 239]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희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794년연표보기 - 해남 청룡리 정만석 영세불망비 건립
이전 시기/일시 1999년 - 화원 정어사 철비 이건
보수|복원 시기/일시 1930년 - 화원 정어사 철비 비각 중수
보수|복원 시기/일시 1999년 - 화원 정어사 철비 비각 중수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1758(영조 34) - 정만석 출생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1834(순조 34) - 정만석 사망
문화재 지정 일시 2010년 05월 26일연표보기 - 화원 정어사 철비 해남군 향토문화유산 제18호로 지정
현 소재지 화원 정어사 철비 -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금평길 14[금평리 239]지도보기
원소재지 어사 정만석 영세불망비 -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신덕리 190-2 일대지도보기
성격 비석
양식 철비
관련 인물 정만석
재질 철제
크기(높이, 너비, 두께) 103㎝[높이]|28㎝[너비]|4㎝[두께]
관리자 해남군 화원면
문화재 지정 번호 해남군 향토문화유산 제18호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금평리에 있는 조선시대 암행어사 정만석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

[개설]

화원 정어사 철비(花源鄭御史鐵碑)해남군 화원면 금평리에 있는 비석으로 암행어사 정만석(鄭晩錫)[1758~1834]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정만석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성균관전적·병조참의 등을 역임한 후 1794년(정조 18) 호남·호서 암행어사로 파견되었다. 당시 전라도 지역은 큰 흉년이 들어 굶어 죽는 사람이 많았는데, 암행어사 정만석이 구휼미 300석을 내주었다고 한다. 화원 정어사 철비는 2010년 5월 26일 해남군 향토문화유산 제18호로 지정되었다.

[건립 경위]

암행어사 정만석은 전라도 지역을 돌던 중 화원 지역에 흉년이 들어 주민들이 기근에 시달리자, 구휼미 300석을 내어 기근을 면하게 해 주었다. 정만석의 공을 기려 주민들이 쇠붙이를 모아 1794년 해남 정만석 영세불망비를 세웠다.

[위치]

화원 정어사 철비해남군 화원면 금평길 14 화원복지회관 앞뜰에 있다. 원래 위치는 해남군 화원면 신덕리 190-2번지 일대에 어사 정만석 영세불망비라 하여 화원 감목관비군과 함께 있었는데, 1999년 현재 위치로 옮겼다.

[형태]

화원 정어사 철비는 거북 형태를 띠는 석제 좌대 위에 철제 비몸을 세웠다. 비몸은 철제이며, 비몸의 머리 부분은 화문, 연화문, 초문을 표현하였다. 비석의 크기는 높이 103㎝, 너비 28㎝ , 두께 4㎝이며, 1칸의 보호각이 있다.

[금석문]

비문 앞면에는 ‘어사정공만석영세불망비(御史鄭公晩錫永世不忘碑)’라고 적혀 있고, 뒷면에는 ‘갑인삼월 일(甲寅三月 日)’이라고 돋을새김으로 적었다.

[현황]

화원 정어사 철비는 2010년 5월 26일 해남군 향토문화유산 제18호로 지정되었다. 비각은 1930년과 1999년 중수하였으며, 해남군 화원면장이 관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화원 정어사 철비는 조선 후기 암행어사 선정비로 사회 제도사를 알 수 있고, 흔히 볼 수 없는 철비이므로 의미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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