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지방 노농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300411
한자 海南地方勞農會
영어공식명칭 Haenam Labor Peasant Association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전라남도 해남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최성환·김은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24년 10월 01일연표보기 - 해남 지방 노농회 창리노농회 설립
설립 시기/일시 1924년 10월 03일연표보기 - 해남 지방 노농회 서홍리노농회 설립
설립 시기/일시 1924년 10월 02일연표보기 - 해남 지방 노농회 영평노농회 설립
설립 시기/일시 1924년 5월연표보기 - 해남 지방 노농회 삼산노농회 설립
성격 노동단체

[정의]

일제 강점기 전라남도 해남 지역에 있었던 노동자·농민 운동 단체.

[설립 목적]

노동자의 인격 상승, 지위 향상과 소작권과 소작료 보장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변천]

전라남도 해남 지역에서는 1924년경 리(里) 또는 몇 개 리(里) 연합의 노농회가 창립되어 1920년대 전반기에 창리노농회, 서홍리노농회, 영평노농회, 삼산노농회가 존재하였다. 창리노농회는 1924년 10월 1일 북평면 남창리에서 김성호 외 5명이 발기하여 창립총회를 개최하였다. 창리노동회 창립총회는 완도군 소안면 지역의 활동가였던 신준희(申畯熙)[농민총동맹 중앙집행위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되었다. 임원으로는 김재철·김점례·김창인·김○현·서민숙·이경일·이병수·채기섭을 선임하였다. 창리노농회는 소작권을 영구 보존하고, 소작료는 답 4할, 전 3할 이내로 할 것 등을 요구하였다.

서홍리노농회는 1924년 10월 3일 북평면 서홍리에서 창립총회가 개최되었다. 나동환의 서홍리 노농회 창립 취지 설명을 시작으로 신만희·신준희의 축사가 있었다. 축사 후 강령과 규약을 통과시켰다. 위원으로는 김상철·김옥섭·김종백·김태진·김○준·나동환·나응수·신재옥·이원석을 선임하였다.

영평노농회는 북평면 영전·평암 두 마을에서 합동으로 1924년 10월 2일 영전리 사정(射亭)에서 창립총회를 개최하였다. 창립총회 때 모인 회원은 300여 명이었고, 윤백인의 영평노농회 창립 취지 설명을 시작으로 신만희·신준희의 축사가 있었다. 신준희의 축사 후 “본회는 무산대중의 해방을 기함”, “본회는 우리의 생활 개선을 도모함”이라는 강령을 채택하였다. 위원으로는 김권현·김명렬·김봉환·김종기·김현생·문사빈·문태준·박형규·윤백율·윤중하·최영배를 선임하였다.

삼산노농회는 1924년 5월 삼산면에서 설립되었다. 1924년 10월 선언서 및 강령을 발표하였다. 강령은 다음과 같다. “우리들은 단결의 위력과 호상 부조의 조직으로써 경제적 복리의 증진과 아울러 지식의 계발을 기함.”, “우리들은 단호한 용기와 유효한 전술로서 자본계급의 역박(力搏)에 대하여 철저적으로 투쟁하기를 기함.”, “우리들은 노동자계급과 자본계급과의 양립할 수 없음을 확인함.”, “우리들은 노동연맹의 실력으로써 노동자계급의 완전한 해방과 자유 평등의 신사회의 건설을 기함.”

해남 지역에 거주하던 상당수의 농민들이 노농회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노농회의 활동은 지주들에게 위협을 주자 소작인들을 동원하여 노농회 파괴 공작을 펴기도 하였다. 북평면 영전리의 경우 노농회원에게는 소작권을 안 준다고 소문을 냈으며, 이러한 이유 등으로 각 리 단위의 노농회는 1926년 경 유명무실해졌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해남 지역 노농회는 주로 소작 관계 개선 활동과 야학 등 교양을 높이는 활동을 하였다.

[의의와 평가]

해남 지역에서 노농회 창립을 할 때 농민총동맹 중앙집행위원 등이 참석하였다는 것은 노농회가 조선노농총동맹의 영향 아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 1920년대 초 해남과 완도가 하나의 운동권으로 묶여 있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 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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