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촌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300368
한자 三村面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지역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원진리|송정리|신흥리|봉학리
시대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변남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정 시기/일시 1906년 - 해남군 녹산면과 진도군 삼촌면을 삼산면으로 통합
관할 지역 삼촌면 -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원진리 지도보기|송정리지도보기|신흥리지도보기|봉학리지도보기

[정의]

조선시대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일부에 있었던 진도군의 옛 땅.

[개설]

삼촌면은 영암의 시종면에 있던 진도군이 1409년에 옮겨와 진도군 사람들이 살았던 고장이다. 1437년 진도군 고군면으로 옮겨간 이후에도 삼촌면은 1906년까지 진도군의 월경지였다. 18세기에 삼촌면 마을은 14개이며 인구는 1000여 명에 이르렀다.

[관련 기록]

『여지도서(輿地圖書)』에서 삼촌면은 “진도군으로부터 100리[39.27㎞] 떨어져 있으며, 편호 268호에 남자 380명, 여자 400명이었다[三村面自官門一百里編戶二百六十八戶男三百八十口女四百口].”라고 하였다. 『호구총수(戶口總數)』에 의하면, 삼촌면은 14개 자연마을에 인구는 964명이 살았다. 감탕(甘湯), 항리(項里), 상금산리(上今山里), 중금산리(中今山里), 용두리(龍頭里), 창리(倉里), 방축리(防築里), 비산비(飛山里), 도토(道吐), 구미리(九味里), 송정리(松亭里), 옹암리(甕巖里), 목신리(木薪里), 덕정리(德亭里)의 원호 243호에 인구 964명[남자 421명, 여자 543명]이었다. 1872년에 작성된 『조선후기지방도』삼촌면에 등장하는 마을은 감당, 도토, 목신, 상금, 송정, 용두, 창리, 항리 등 8개 마을이다. 당시 창리에는 진도의 외창으로 삼촌창(三村倉)이 있었으며, 해남과 경계에는 삼촌포가 있어 진도와 해로로 연결되는 소통로 구실을 하였다.

[내용]

삼촌면은 현재 해남군 삼산면 원진리, 송정리, 신흥리, 봉학리 일대이다.

[변천]

진도군은 1350년(충정왕 2) 왜구로 인하여 내륙인 영암군 명산면[지금 시종면 일부]으로 옮기었다. 그런데 진도에서 명산면이 너무 멀다는 이유로 1409년 해남현과 진도군를 병합하여 해진군이라 칭하고 삼산면 녹산역터에 축성을 하고 읍치를 정하였다. 이때 진도군 사람들이 해남으로 옮겨 와 정착한 곳이 삼촌면이다. 1437년 해남과 진도가 다시 나뉘어 진도가 진도군 고군면으로 읍치를 옮겨간 이후에도 삼촌면은 행정구역이 조정되는 1906년까지 진도에 속한 월경지였다. 이후 진도군에 속하였던 삼촌면은 1906년 해남군 녹산면과 병합되어 해남군 삼산면으로 재탄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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