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안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300357
한자 固安縣
영어공식명칭 Goanhyeon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지역 전라남도 해남군 마산면|계곡면|산이면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집필자 신동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정 시기/일시 757년연표보기 - 고안현 제정
개정 시기/일시 940년연표보기 - 고안현에서 죽산현으로 개칭
관할 지역 고안현 - 전라남도 해남군 마산면 지도보기|계곡면지도보기|산이면지도보기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마산면과 계곡면, 산이반도 일대를 주축으로 하는 통일신라의 지방 행정구역.

[개설]

통일신라 9주 가운데 무주[무진주, 지금의 광주] 관할의 군현 수는 15군과 43현이었다. 당시 고안현(固安縣)양무군(陽武郡)과 영속관계에 있었다.

[제정 경위 및 목적]

고안현은 백제 때에 고서이현(古西伊縣)이었는데, 통일신라 757년(경덕왕 16)에 이름이 바뀐 것이다. 주군현 간의 영속체제를 강화하면서 행정구역명이 바뀌었다.

[관련 기록]

『삼국사기(三國史記)』 양무군조에 따르며 “고안현은 원래 백제 고서이현이었던 것을 경덕왕이 개칭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고려사지리지(高麗史地理志)』에 따르면 “죽산현(竹山縣)은 본래 백제의 고서이현으로 신라 경덕왕 때 이름을 고안현으로 고쳐 양무군의 영현으로 삼았다.”라고 되어 있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는 “죽산(竹山)은 본래 고서이현이었는데, 신라에서 고안현으로 고쳐서 양무군의 영현으로 삼았고, 고려에서 죽산으로 고쳐서 영암의 임내(任內)로 하였다.”라고 적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는 “죽산은 본래 백제의 고서이현이었는데, 신라 때에 고안현으로 고쳐 양무군에 딸린 현이 되었으며, 동안(同安)이라고도 썼다. 고려 때에 지금의 이름으로 고쳐 영암군에 예속되었다가 본조에 이르러 본현에 내속되었다. 그곳에 옛 돌성이 있는데 둘레가 2,640자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내용]

고안현은 통일신라 시기 양무군의 관할 아래 있었다. 현재의 마산면과 계곡면, 산이반도 일대이다. 학자에 따라서는 영암호 주변의 마산면옥천면계곡면 일대로 비정하기도 한다. 또 마산면의 맹진리산성·산막리산성·죽산성지 등의 고성(古城)에 치소가 위치하였을 것으로 보고 있다.

[변천]

해남 지역은 삼국이 정립되는 시기까지 독자적인 세력권을 형성하고 있었다. 4세기 근초고왕 무렵 백제에 의해 일시적으로 복속되기는 했으나 다시금 독자적인 세력을 유지하였다. 해남이 백제의 직접적인 지배에 들어간 것은 6세기 성왕대 담로제 실시 시기와 5방(方) 1군제(郡制) 사이인 것으로 보인다. 백제시대에 고서이현이었다가 통일신라 시대에 고안현 혹은 동안현으로 이름이 바뀌면서 양무군의 영현(領縣)이 되었다. 고려 때 죽산현(竹山縣)으로 이름이 바뀌면서 영암군의 속현이 되었다. 조선시대 1437년(세종 19) 진도군과 해남현이 분위되는 시기에 마산 장촌에 자리한 죽산현 치소는 독자적인 행정구역으로 영암군 관할이었다. 1447년(세종 29) 죽산현과 황원군이 해남으로 이속되면서 영암에서 해남현으로 편입되었다.

[의의와 평가]

고대부터 조선시대까지 해남 지역 행정 구역의 연원과 변천 과정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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