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300280
한자 三村浦
영어공식명칭 Samchonpo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고지명
지역 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 해창리
시대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변남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비정 지역 삼촌포 - 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 해창리 지도보기
성격 포구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 해창리 인근에 있었던 조선시대 포구.

[개설]

삼촌포(三村浦)는 지금의 삼산천의 하류인 화산면 해창리 인근에 있었으며, 조선 초기 기록에 보이는 오래된 포구이다. 해진군(海珍郡)의 관문이자 병선들의 정박처였고, 제주를 왕래할 때 이용하던 항구였다. 진도가 섬으로 옮겨 간 이후에는 진도군과 소통로 역할을 하였다.

[명칭 유래]

조선시대 해남에 들어와 있던 진도군 삼촌면과 진도군 사이를 연결하는 포구였으므로 삼촌포라 하였다.

[형성 및 변천]

해진군은 1409년 해남과 진도를 병합한 옛 고을명이다. 1409년 진도군이 영암군 시종면에서 삼촌면으로 옮겨 오고, 1412년에는 해남현도 현산면 고현에서 삼산면 녹산역 인근으로 옮겨왔다. 이때 삼촌포는 해진군의 관문이었다. 1437년 해남과 진도가 나뉘어 진도가 읍치를 섬으로 옮겨간 이후에도 삼촌면은 1906년까지 진도에 속했다. 이때 삼촌포는 진도와 연결되는 소통로 구실을 하였다. 삼촌면은 지금 해남군 삼산면의 일부이며 감당, 도토, 목신, 상금, 송정, 용두, 창리, 항리[해남군 삼산면 신흥리 감당마을, 신흥리 상금마을, 송정리 도토마을, 송정리 송정마을, 원진리 목신마을, 창리 용두마을|창리 창리마을] 등 13개 마을이다. 삼촌포에는 어란의 병선들이 정박하였다. 중선 4척과 군사 480명과 뱃사공 4명을 거느렸다[領中船四艘, 軍四百八十名, 梢工四名]. 15세기 중반 무렵이 되어 병선들은 섬으로 옮겨갔다.

1906년 삼촌면이 해남과 합병되자 진도와 통하였던 삼촌포의 기능도 축소되었다. 그러다가 1988년 고천암 방조제 공사로 바닷물이 차단되어 포구의 기능도 완전히 소멸되었다.

[위치 비정/행정 구역상의 구분]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전라도 조에 “어란(於蘭)은 해진군의 남쪽 삼촌포에 있다[於蘭 在海珍郡南三寸浦].”라고 하였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 『해남읍지(海南邑誌)』에서는 “현 남쪽 20리[약 7.85㎞]의 진도와 경계에 있다[三寸浦在縣南二十里珍島郡界].”라고 하였다. 고어란해남현에서 남쪽으로 25리[약 9.82㎞]가 떨어져 있었으므로 삼촌포는 상류인 해창리 인근으로 추정된다. 어성포는 삼촌포 상류에 있었고 인근에 해창이 있다.

[관련 기록]

『고려사(高麗史)』 탐라현 조에 육지부에서 제주 가는 배가 출발하는 포구 3처로 나주와 강진, 해남을 언급하면서 해남에서는 삼촌포에서 출발하여 거요량과 삼내도를 거쳐 추자도에 이른다[發海南, 則從三寸浦, 歷巨要梁·三內島 至楸子島]고 하였다. 또 『세종실록지리지』 대정현 조에서는 해진(海珍)의 삼촌포에서 출발한다[發海珍則從三寸浦, 歷巨要梁、三內島]고 하였다. 『해남읍지』[1872]에서는 “현 남쪽 20리의 진도와 경계에 있으며 지금은 진도에 속한다[三寸浦在縣南二十里珍島郡界今屬珍島].”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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