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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해남 지역이 수록되어 있는 1872년에 제작된 지방지도. 『1872년 지방지도(1872年 地方地圖)』는 1871년(고종 8) ‘열읍지도 등상령(列邑地圖謄上令)’에 따라 이듬해 전라도 해남현, 영암군 이진진, 영암군, 영암 어란진에서 발급한 현 해남군 일원의 지도이다. 『1872년 지방지도』는 필사 채색본 낱장으로 되어 있다. 현재 서울특별시 관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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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송호리 갈두마을에 설치되었던 수군진. 갈두진(葛頭鎭)은 한반도의 최남단에 설치된 진이었다. 기록에 의하면 관방은 지리적으로 취약하였으며 제주도민의 진휼(賑恤)을 위한 목적이 강하였다. 당시 제주도민 진휼곡은 나주의 제민창에 보관하였다가 제주도 해산물과 바꾸어 가도록 하였으나 뱃길이 멀어 가까운 갈두로 변경하였던 것이다. 갈두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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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계곡면 당산리에 세거한 장흥임씨들의 대동계 문서. 해남군 계곡면 당산리는 장흥임씨(長興任氏) 집성촌으로, 1600년경 임진설(林震說)이 분가하여 정착하였다고 한다. 마을에는 300년 전부터 대동계가 조직되어 있었고, 대동계와 관련된 고문서들이 현재까지 전하고 있다. 2009년 당시 마을 이장이었던 임경운이 집안의 고문서를 정리하던 중 발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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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해남 출신 문신인 윤선도의 시문집. 『고산유고(孤山遺稿)』는 유고 6권과 부록인 연보 및 유사(遺事) 3권 등 모두 9권으로 간행된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1587~1671]의 문집이다. 『고산유고』의 저자는 우리나라 국문학의 최고봉으로 평가받는 윤선도이다. 『고산유고』가 간행된 것은 정조(正祖)[1752~1800]와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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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 지역이 나타나는 조선시대 지도의 총칭. 우리나라의 고지도는 『삼국사기(三國史記)』 등의 문헌을 통해서 고대부터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현전하는 지도는 대부분 조선시대에 제작되었다. 전라남도 해남 지역이 수록되어 있는 고지도로는 『여지도(輿地圖)』, 『지승(地乘)』, 『광여도(廣輿圖)』, 『비변사인 방안지도(備邊司印方眼地圖)』, 『해동지도(海東地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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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해남윤씨 가문의 종부 광주이씨가 지은 자전적 수기. 『규한록(閨恨錄)』은 해남윤씨 가문의 며느리인 광주이씨(廣州李氏)가 대종가 종부의 대임을 맡게 되면서 겪어야 했던 파란만장한 사연들을 한글로 쓴 서간체 수필 형식의 수기이다. 조선시대 궁궐이나 사대부가의 부인들이 쓴 규방문학 중 궁중의 이야기를 기록한 『한중록(閑中錄)』이나 『계축일기(癸丑日記)』 등에 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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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 금풍리 명금마을에 있는 창녕성씨 사우. 금성사(琴城祠)는 성여완, 성석용, 성개, 성희, 성삼문, 성담수 6위를 배향하는 창녕성씨 사우로 원래 해남읍 백야리 오천마을에 건립하였다. 정확한 건립 연대는 확인이 어렵다. 1920년 현재 위치로 옮겨 배향하고 있다. 성여완(成汝完)[1309~1397]은 고려 말기의 충신이다. 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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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해남현감을 지낸 문신. 김서구(金叙九)[1725~?]는 1780년 2월부터 1781년 6월까지 해남현감(海南縣監)으로 있으면서 남천교를 중수하였다. 김서구의 자는 맹주(孟疇) 또는 성주(聖疇), 본관은 풍산(豐山)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김시하(金時夏), 할아버지는 김정화(金鼎和)이다. 친아버지는 김집(金𠍱)이며 김휴(金休)의 양자로 입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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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남천리 남천마을에 있는 돌로 만든 장승. 남천리 석장승(南川里石長丞)은 조선 후기에 조성되었다. 남천리 석조미륵불입상, 남천리 미륵불, 미륵할머니라고도 부른다. 남천마을 인근 남천리 온인마을에는 ‘미륵할아버지’ 또는 ‘총각바위’라고 불리는 1기의 입석이 숲속에 매몰되어 있다. 자연석으로 아무런 형상도 조각되어 있지 않다. 미륵할아버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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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 노송리에 있는 1889년 건립된 김해김씨 사우. 노송사(老松祠)는 1889년 창의사 터에 복설한 김해김씨 사우이다. 노송사에 소장된 해남 노송사 소장 고문서는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82호로 지정되었다. 노송사는 해남군 산이면 노송리 주성산 산자락 아래에 있다. 노송사는 1728년(영조 4)에 매헌(梅軒) 김기손(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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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김정호가 만든 『대동여지도』에 수록된 해남 지도.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해남현(海南縣)」 은 고산자(古山子) 김정호(金正浩)[1804~1866]가 1861년(철종 12) 22첩으로 나누어 만든 목판본 조선 지도 중 해남현 부분이다. 1864년에는 일부분을 수정하여 재판하였으며, 목판의 일부가 국립중앙박물관과 숭실대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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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두륜산 대흥사 승탑원에 있는 비. 대둔사 사적비(大芚寺事蹟碑)는 1744년(영조 20) 건립되었다.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두륜산 대흥사 승탑원에 있다. 대둔사 사적비는 대흥사의 창건과 중수에 관한 역사를 기록한 비로 1744년(영조 20)에 건립되었다. 대둔사 사적비는 사찰 입구 승탑원에 승탑이나 승려비와 함께 세워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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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4년 전후에 승려 완호 윤우 등이 해남 대흥사의 역사와 사적을 기록한 책. 대흥사(大興寺)는 해남군 삼산면 대흥사길 400[구림리 799]에 있는 사찰이다. 옛날 두륜산을 대둔산(大屯山)이라고 하였기 때문에 대흥사는 대둔사로도 불렸다. 『대둔사지(大屯寺誌)』에 따르면 응진전(應眞殿) 앞에 있는 삼층석탑의 연대가 신라 말로 추정되고 있으므로 대흥사의 창건 시기는 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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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 대산리에 있는 1862년 건립된 통천최씨 사우. 대산사(大山祠)는 고려 말기와 조선 초기에 왜구 토벌에 공을 세운 양장공 최운해(崔雲海)[1347~1404], 활연정 최윤덕(崔潤德)[1376~1445], 옥포 최산정 등의 충의를 기리는 사우로 1862년 건립되었다. 최운해는 무신으로 본관은 통천(通川), 자는 호보(浩甫), 시호는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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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에 있는 대흥사를 빛낸 13명의 강사. 해남 대흥사(大興寺)의 고승은 서산대사(西山大師)[1520~1604]와 제자들인 13대종사, 13대강사로 대표된다. 1823년 대흥사에서 간행된 『대둔사지(大芚寺志)』에 이들의 행적과 사상 등이 약술되어 있다. 대흥사는 1788년 사찰에 표충사(表忠祠)를 세우고 서산대사의 가사와 발우를 보존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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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에 있는 대흥사를 빛낸 13명의 고승. 해남 대흥사(大興寺)의 고승은 서산대사(西山大師)[1520~1604]와 제자들인 13대종사, 13대강사로 대표된다. 1823년 대흥사에서 간행된 『대둔사지(大芚寺志)』에 이들의 행적과 사상 등이 약술되어 있다. 서산대사의 법맥을 이은 고승으로는 사명(四溟) 유정(惟政)[1544~1610],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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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두륜산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 대흥사의 산내 암자. 대흥사 남미륵암의 정확한 창건에 대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대둔사지(大芚寺誌)』에 의하면 1797년에 전훤 선사(典煊禪師)가 중수하였다는 기록과 마애불을 미륵불로 부르고 있고 당시에도 전실이 없어 이끼가 끼어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를 통하여 남미륵암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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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의 본사인 대흥사의 산내 암자. 대흥사 북미륵암은 만일암의 북쪽에 있기 때문에 북미륵암이라고 불리는 산내 암자이다. 1970년경 해남 대흥사 북미륵암 동삼층석탑에서 3점의 고려시대 금동불상이 수습되어 현재 성보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2004년 마애불을 보호하는 전각인 용화전을 해체 공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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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두륜산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대흥사의 산내 암자. 창건 시기는 미상이다. 『대둔사지(大芚寺誌)』에 의하면 1630년(인조 8)에 수월극현(水月克玄) 대사와 덕호(德浩)가 중건하였다고 한다. 이로써 창건 시기는 1630년보다 더 위로 올라간다. 1693년(숙종 19) 이홍록(李弘錄)이 덕탄(德坦)과 함께 중건하였다.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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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대흥사 부도전에 있는 초의선사의 승탑. 대흥사 초의탑(大興寺艸衣塔)은 승려 초의선사(草衣禪師)[1786~1866]가 1866년 입적한 지 4년 후인 1871년에 초의선사를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초의선사는 초의의순(草衣意恂)이라고도 한다. 대흥사 초의탑은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대흥사 경내에서 일주문을 지나 오른쪽 산기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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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에 있는 대흥사에 봉안된 조선 후기 관세음보살도 2점. 「대흥사 관음보살도(大興寺觀音菩薩圖)」는 해남군 대흥사에 봉안되어 있다. 조선 후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관세음보살도 2점으로 1991년 7월 19일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79호로 지정되었다. 「대흥사 관음보살도」 중 준제관음보살도(准提觀音菩薩圖)는 화기가 없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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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대흥사에 있는 비로자나불을 모신 조선시대 불전. 대흥사 대광명전(大興寺大光明殿)은 법신불인 비로자나불을 모신 전각이며,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두륜산 대흥사에 있다. 1982년 10월 15일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94호로 지정되었다. 대흥사 대광명전은 천불전의 남동쪽에 있다. 표충사의 동쪽 뒤편으로 300m 들어간 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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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대흥사에 있는 조선시대 불전. 대흥사 용화당(大興寺龍華堂)은 강원(講院)을 위한 강당 겸 선방으로,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두륜산 대흥사에 있다. 1982년 10월 15일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93호로 지정되었다. 대흥사 용화당은 경내의 남원(南院) 구역에 있다. 해남 대흥사 천불전[보물 제1807호]의 왼쪽인 남쪽 앞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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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두륜산 해남 대흥사 천불전에 봉안된 옥석제 천불상. 대흥사 천불상(大興寺千佛像)은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두륜산 해남 대흥사 천불전에 봉안되어 있다. 1817년 옥으로 만든 천불상으로 1974년 9월 24일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52호로 지정되었다. 대흥사 천불상은 대흥사 남원(南院)의 중심 불전인 천불전[보물 제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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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 영신리에 있는 조선 후기 건립된 제주양씨 양득중의 영당. 덕촌영당(德村影堂)은 1800년대 초반 충청도 부여에서 옮겨 와 지은 덕촌 양득중(梁得中)[1665~1742]의 영당이다. 해남군 옥천면 영신리에 있다. 양득중의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택부(擇夫), 호는 덕촌(德村)이다. 아버지는 양우주(梁禹疇)이며, 어머니는 죽산안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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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 관춘리 보타산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 대흥사의 말사. 도장사(道場寺) 이름은 1530년(중종 25)에 펴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없지만, 조선 후기 1799년(정조 23)에 펴낸 『범우고』와 1872년(고종 9)과 1875년(고종 12) 무렵 간행된 『호남읍지』에 도장사(道藏寺)라는 이름으로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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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해남 대흥사 일지암에서 정진하던 초의선사가 다도를 시로 설명하여 엮은 책. 『동다송(東茶頌)』은 조선 후기의 승려 초의선사(草衣禪師)[1786~1866]가 동국(東國), 즉 조선에서 생산되는 차의 미덕을 찬양하며 쓴 책이다. 초의선사의 본관은 인동(仁同)이며 속명은 장의순(張意恂), 법호는 초의(艸衣)이다. 1786년(정조 10)에 태어나 15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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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녕을 시조로 하고 오빈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해남군의 세거 성씨. 동복오씨(同福吳氏)는 오빈(吳彬)을 입향조로 하는 해남 지역의 세거 성씨 가운데 하나로 계곡면과 산이면에 주로 기반을 두고 있다. 오씨는 본래 중국에서 건너온 성씨로, 1962년 편찬된 『오씨대동보』는 모든 오씨의 시조는 신라 지증왕 때 중국에서 우리나라로 건너온 오첨(吳瞻)이라고 적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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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구림리 모래섬 등산진에 설치되었던 원. 등산원(登山院)은 조선시대에 한양과 해남과 진도 지방을 연결하던 교통 및 통신 제도로 조선 후기 등산진에 설치된 원이다. 등산진은 해남현의 화원반도에서 무안 목포진과 통하는 나루였다. 등산원은 벼슬아치들이 배나 바람을 기다리는 장소로 이용되었다. 등산진은 모래섬[사도, 별칭 마래섬]에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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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흥사에서 활동한 해남 출신 승려 만화(萬化) 원오(圓悟)[1694~1758]는 1694년(숙종 20)년 9월 해남군 문내면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수군영의 심부름꾼이 되어 관아를 출입하다가 대둔사(大芚寺)[현 대흥사의 옛 이름]로 출가하였다. 만화 원오는 당시 전국에 이름을 떨치던 당대의 선지식 환성(喚醒) 지안(志安)[1664~1729]과 호암(虎岩) 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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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마산면 학의리 육일시에 있었던 조선시대의 원. 만희원은 조선시대 한양과 해남지역의 교통과 통신을 원만히 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에 만희원은 “현의 서쪽 12리[4.71㎞]에 있다.”라고 하는 것이 마지막 기록이다. 『여지도서(輿地圖書)』 이후의 지리지에서는 만희원은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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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서상리 망해산 정상에 있는 조선 후기 누정. 망해루(望海樓)는 해남군 문내면 서상리 망해산 정상에 있는 전라우수영의 망루이다. 전라우수영 망루는 망해루 외에도 구 충무사의 남장대[정해루(靜梅樓)]와 북장대가 더 있었다. 망해루는 서상리 망해산 정상에 있는데 성과 함께 성루로 건설되었다. 건립된 시기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밝혀진 건립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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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7년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수군이 해남과 진도 사이의 해협인 울돌목에서 일본 왜선을 크게 격파한 해전. 임진왜란 전쟁 중 일본은 1597년 정유년에 우리나라를 다시 침입한다. 이때 이순신은 일본의 계략에 의해 조정에서 탄핵을 당하였다. 1597년 4월 이순신은 한 달 가까이 투옥된 상태에서 혹독한 문초를 받았고, 5월 16일에야 풀려나 권율의 진영에서 백의종군하라는 명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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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구교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세워진 열녀각. 열녀 무안박씨는 해남군 마산면 장촌리에서 태어났다. 타고난 품성이 곧고 정숙하였으며, 법도에 따라 행동하였다. 19세에 해남군 마산면 남송리 민씨 집안으로 출가하여 민정수의 아내가 되었다. 그러나 출가한 지 3년 만에 남편이 홍역으로 세상을 떠났다. 무안박씨는 슬픔에 겨워하다 몸이 야위어 갔다. 남편의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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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학동리 충무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조석창의 효자 감응비와 비각. 석남(石南) 조석창(曺錫昌)은 부모 생전에 효성이 지극하였을 뿐 아니라 부모가 죽은 뒤 백발이 성한 몸으로 묘 앞에서 시묘살이를 하였다. 조석창은 증조할아버지의 비석이 운반 도중 바다에 빠지자 밤낮으로 하늘에 빌었다고 한다. 빌기를 한달 여 만에 꿈속에서 기인이 나타나 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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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해리에 있는 1781년 건립된 여흥민씨 사우. 미산서원(眉山書阮)은 계유정난 순절인 충정공 민신을 주벽으로 하고 아들 민보창(閔甫昌), 민보해(閔甫諧), 민보흥(閔甫興)의 충절을 추모하고자 1781년(정조 5) 건립한 사우이다. 미산서원은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해리 미암산 기슭 아래에 있다. 미산서원은 178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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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서정리 달마산 미황사 대웅보전에 봉안된 조선 후기 불화. 「미황사 괘불탱(美黃寺掛佛幀)」은 해남 달마산 미황사 대웅보전에 봉안된 조선 후기 불화이다. 2002년 7월 2일 보물 제1342호로 지정되었다. 석가모니불 독존 형식의 걸개 그림이다. 미황사는 해남군 송지면 서정리 달마산 중턱에 있다. 한반도의 끝자락에 자리 잡은 땅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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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서정리에 있는 달마산 미황사 창건과 중수에 관한 역사가 기록된 사적비. 미황사 사적비(美黃寺事蹟碑)는 해남군 송지면 서정리 달마산 중턱에 있는 미황사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는 비석이다. 미황사 창건과 중수에 관한 역사의 자취를 기록하고자 1692년(숙종 18) 9월 두인(杜忍)의 주관 아래 비석을 건립하였다. 미황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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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해남 출신의 문신. 민여안(閔與顔)[1565~1637]은 본관이 여흥(驪興), 자는 자우(子愚), 호를 귤주(橘洲)라 하고, 속칭 민처사(閔處士)라고 하였으며 해남의 귤정 윤구, 귤옥 윤광계와 더불어 ‘해남 3귤’로도 불린다 민여안은 1565년(명종 20) 해남읍 동외리에서 출생하였으며 눌재(訥齋) 박상(朴祥), 미암(眉巖) 유희춘(柳希春)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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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해남 출신의 효자. 박필양(朴弼瀁)[?~?]의 본향은 밀양(密陽)이며, 그 외 자세한 가계는 전하지 않는다. 박필양은 해남 출신의 효자이다. 늙은 아버지가 엄동설한에 병이 들어 생선을 먹고 싶어 하자 얼음을 깨고 물고기를 잡았으며, 아버지가 사망하자 상중에 술과 고기를 입에도 대지 않았다고 한다. 1890년(고종 27) 지역 유림이 박필양의 효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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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해남 출신의 효자. 방두선(方斗善)[1650~?]의 본관은 온양(溫陽)이며, 그 외 가계는 전하지 않는다. 방두선은 1650년 가난한 농부의 외아들로 태어나 삯일을 하며 생계를 꾸렸다. 열두 살 때 아버지가 사망하자 소금 행상을 하며 홀어머니를 극진히 봉양하여 온 고을에 효자 소금장수로 소문이 났다. 어른이 되어 장가를 들었는데 어머니가 며느리를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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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해남 출신의 문인. 백진남(白振南)[1564~1618]의 본관은 해미(海美)이며 자는 선명(善鳴), 호는 송호(松湖)이다. 할아버지는 참봉을 지낸 백세인(白世仁)이며, 아버지는 옥봉(玉峯) 백광훈(白光勳)이다. 어머니는 정강왕의 딸 하동정씨(河東鄭氏)이며, 부인은 선전관 윤관중(尹寬中)의 딸 해남윤씨(海南尹氏)이다. 문장으로 이름이 높았던 백광홍(白光弘), 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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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에 있는 예불을 드리기 위해 세운 불전과 승려의 생활 및 수행 공간인 건축물. 전라남도 지역에 불교가 본격 유입된 것은 8세기로 추정된다. 해남 지역도 이 시기에 불교가 유입되어 이후 불전이나 승방 등의 불교 건축물이 신라시대부터 조선 전기까지 계속하여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남아 있는 불교 건축물은 임진왜란 후 사찰을 중창 및 중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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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금평리에서 사찰 서동사와 관련하여 전해 오는 이야기. 「서동사」는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74호로 지정된 서동사(瑞洞寺) 대웅전(大雄殿)을 최치원(崔致遠)[857~?]이 창건하였으며, 정유재란(丁酉再亂)[1597] 때 칡덩굴이 절을 덮어 소실되지 않았다는 이야기이다. 「서동사」는 2016년 12월 15일 해남군 화원면 금평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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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해남 대흥사에서 활동한 승려. 서산대사(西山大師)[1520~1604]의 본관은 완산(完山)이며 속명은 최여신(崔汝信), 자는 현응(玄應), 호는 청허(淸虛), 법명은 휴정(休靜)이다. 별호는 서산대사·백화도인(白華道人)·풍악산인(楓岳山人)·두류산인(頭流山人)·묘향산인(妙香山人)·조계퇴은(曹溪退隱)·병로(病老) 등이다. 임진왜란 때 전국에 승첩을 돌려 승군을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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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두륜산 대흥사 표충사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서산대사의 행적비. 서산대사 표충사 기적비(西山大師表忠祠紀蹟碑)는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두륜산 대흥사에 있다. 대흥사에 있는 서산대사를 모신 표충사에는 서산대사의 행적을 기록한 기적비가 있다. 임진왜란 당시 승병을 규합하여 전쟁에 공을 세운 서산대사가 입적한 이후 대둔사(大芚寺)[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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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대흥사에 있는 17세기 초 청허 휴정이 중국의 『사가어록』을 발췌한 문헌. 『서산대사 행초 정선사가록(西山大師行草精選四家錄)』은 조선 중기의 고승이면서 승병장인 청허 휴정(淸虛休靜)[1520~1604]이 중국의 『사가어록(四家語錄)』의 중요한 구절을 발췌한 문헌이다. 『사가어록』은 중국 당(唐)대 선문(禪門)을 대표하는 임제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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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에서 설봉대사의 탄생과 관련하여 전해 오는 이야기. 「설봉대사」는 서산대사의 4대 법손(法孫)으로 알려진 설봉당(雪峰堂)[1678~1738]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설봉대사가 태어난 날 눈이 내렸으며, 호랑이가 어린 설봉대사를 해치지 않았다는 내용이다. 미황사 부도전에 설봉당 부도비가 있다. 「설봉대사」는 2016년 5월 1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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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구교리 서림공원 내에 있는 조선 후기 관찰사 이진수와 김계온의 선정과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2기의 비. 해남군 해남읍 구교리 서림공원 내에 있는 17기의 비 중 관찰사불망비(觀察使不忘碑群)는 2기가 있다. 관찰사(觀察使)는 조선시대 각 도에 파견되어 지방 통치의 책임을 맡았던 최고의 지방 장관으로 감사(監司)·도백(道伯)·방백(方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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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구교리 서림공원 내에 있는 조선 후기 전라도 암행어사의 선정과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3기의 비. 서림공원 내에 있는 17기의 비 중 어사 불망비는 3기가 있다. 심상학(沈相學), 이면상(李冕相), 이승욱(李承旭)은 조선 후기 전라도 암행어사로 활동한 인물들이다. 암행어사(暗行御史)는 조선시대 왕의 측근의 당하(堂下)[정3품 하계 통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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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구교리 서림공원 내에 있는 조선 후기 해남군수 마준영, 이용우의 선정과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3기의 비. 해남군 해남읍 구교리 서림공원 내에 17기의 비 중 해남군수 선정비는 3기가 있다. 이용우(李容愚), 마준영(馬駿榮)은 조선 후기 해남군수로 활동한 인물들이다. 그중 군수 이용우 비는 해남군 화원면 장춘리와 화산면 해창리에도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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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구교리 346-3 서림공원 내에 있는 조선 후기 해남현감의 선정과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8기의 비. 서림공원 내 17기의 비 중 해남현감선정비는 8기가 있다. 류상재, 이당진, 김좌신, 오수채, 한계원, 류장렬, 김성택, 이용중은 조선 후기 해남현감으로 활동한 인물들이다. 조선시대 해남현은 1895년에 나주부 해남군으로 개편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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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동해리에 있는 대한 불교 원효종 소속 사찰. 성도사(成道寺)는 대흥사(大興寺)의 말사였던 성도암(成道庵)으로 백제 구이신왕[?~427] 때 아도화상이 창건하였다고 전해지지만 정확한 기록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대흥사의 만일암 창건 10년 후에 세워졌다는 설이 있으나, 이에 대한 기록 역시 전하지 않고 있다. 또 고려 중기에 중창되었다고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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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 지역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세거하고 있는 성씨. 고려 건국 이전에 성씨(姓氏)는 왕족과 극히 일부의 중앙 귀족들만이 가지고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王建)이 후삼국을 통일하고 940년(태조 23) 개국공신들에게 땅과 성씨를 하사하면서부터 출신지와 거주지를 본관으로 하는 세거 성씨(世居姓氏)가 비롯되었다. 이후 과거제의 영향으로 관료 제도가 보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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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에 백송정과 관련하여 전해 오는 이야기. 「송정리 백송정」은 옥봉(玉峯) 백광훈(白光勳)[1537~1582]의 아들인 송호(松湖) 백진남(白振南)[1564~1618]이 해남군 삼산면 송정리에 있는 백송정(百松亭)에서 후학을 양성하였다는 이야기이다. 백광훈과 아들 백진남을 비롯한 그 후손들의 유품인 옥산서실 소장품 일괄은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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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어란리에 있는 어란을 모신 사당. 송지 어란당집은 2011년 7월 6일 해남군 향토문화유산 제20호로 지정되었다. 이 당집은 바닷가 마을 고유의 전통적 기복신앙을 나타낸다.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어란리에 있다. 송지 어란당집은 돌담으로 둘러싸인 곳에 흙벽으로 지어져 있다. 지붕은 팔작기와지붕이며 당집 전면에 흰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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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송정리에 있었던 조선 후기의 정자. 송호정(松湖亭)은 해남군 삼산면 송정리에 있는 정자로 조선시대 송호 백진남(白振南)[1564~1618]이 지었고 나중에 연안이씨의 소유가 되었다. 다른 이름으로 송호당(松湖堂)이라고도 한다. 송호정은 석천 임억령 등 저명한 풍류객들이 묵어 간 곳으로 관련 내용이 시로 전한다. 정자가 있던 큰 소나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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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우경을 시조로 하고 백광훈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해남군의 세거 성씨. 수원 백씨(水原白氏)는 해남군의 세거 성씨 가운데 하나로, 주로 해남군 옥천면에 기반을 두고 있다. 수원백씨의 시조 백우경(白宇經)은 중국 소주(蘇州) 출신으로, 당(唐)나라에서 첨의사(僉議事)와 이부상서(吏部尙書)를 지냈으나 간신들의 모함을 받아 780년(선덕왕 1) 신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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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어란리에 있는 조선 후기 어란만호 김성익, 최성륜, 김종희, 김종석 등을 기리기 위해 세운 5기의 비. 어란포진(於蘭浦鎭)은 조선시대 수군을 지휘하던 만호가 머물던 곳이며, 조선시대 전라도 지역에 출몰하던 왜구를 방어하기 위한 성곽으로 세워졌다. 어란포진의 위치는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어란리 어란진항 일대이다. 송지면은 한반도 최남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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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를 시조로 하고 이복길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해남군의 세거 성씨. 연안이씨는 해남군의 세거 성씨 가운데 하나로 해남 입향조는 이복길이다. 연안이씨(延安李氏)의 시조는 당(唐)나라 장군 이무(李茂)이다. 이무는 660년 소정방(蘇定方)이 신라의 동맹군으로 백제를 침공했을 때 중랑장으로 따라왔다가 신라에 귀화한 것으로 전한다. 연안이씨는 계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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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마산면 화내리에 있는 1732년 건립된 원주이씨 사우. 영산사(英山祠)는 1732년(영조 8)에 건립된 임진왜란 공신 이계정(李繼鄭)[1542~1595]을 비롯하여 원주이씨 충신 9위를 배향한 사우이다. 이계정의 자는 경윤(景胤), 본관은 원주(原州)이다. 무과에 급제하였고 임진왜란 때 곤양군수로 왜적을 격퇴하였고, 무주 조방장에 제수되어 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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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마산면 화내리에 있는 영산사 소장 고문서. 영산사(英山祠)는 임진왜란 때 공을 세워 공신에 오른 이계정(李繼鄭)을 위시한 이숙형(李淑亨), 이황(李璜), 이대행(李大行), 이호(李琥), 이순(李珣), 이원해(李元海), 이준(李浚), 이성춘(李成春) 등 원주이씨(原州李氏) 문중 9명의 충신을 모시고 제사지내는 사우(祠宇)이다. 1732년(영조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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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계곡면 덕정리에 있는 1789년 건립된 장흥임씨 사우. 예양사(汭陽祠)는 1789년(정조 13) 건립된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예양군(汭陽君) 임발영(任發英)[?~?] 등 장흥임씨 육현을 배향하는 사우이다. 예양군 임발영은 1568년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대가를 호종하여 안주목사 등을 제수받았으며 예양군에 추봉되었다. 임충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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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해남 출신의 문신이자 실학자. 오달운(吳達運)[1700~1748]은 18세기 초에 진보적인 사상을 품고 사회개혁 사상을 제시한 실학의 선각자이다. 오달운의 자는 백통(伯通), 호는 해금(海錦), 본관은 동복(同福)이다. 지금의 해남군 계곡면 용지리에서 태어났다. 증조할아버지는 오명승(吳名勝)이며, 할아버지는 오필주(吳弼周)이다. 어머니는 최남극(崔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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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 송산리에 있는 1712년 건립된 수원백씨 사우. 옥봉사(玉峰祠)는 옥봉 백광훈(白光勳)[1537~1582] 등 수원백씨 선현 4위를 모신 사우로 1712년(숙종 38) 후손들이 건립하였다. 백광훈을 주벽으로 아들인 송호 백진남(白振南)[1564~1618], 무안 백흥남, 백진남의 아들인 옥천 백상빈 4위를 배향하고 있다. 백광훈은 시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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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흥사를 중창한 해남 출신 승려. 완호(玩虎) 윤우(倫佑)[1758~1826]의 자는 삼여(三如)이다. 완호는 법호이고 윤우는 법명이다. 아버지는 김시택(金時澤)이다. 1758년(영조 34) 해남에서 태어나 13세에 대둔사(大芚寺)[대흥사의 옛 이름]에 출가하였고, 17세에 서일(瑞日)에게 구족계를 받았다. 백련법사(白蓮法師)에게 교학을 익히고, 연담(蓮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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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용암리에 있는 조선 후기 해남현감 신림, 해남군수 홍건, 경리사 민영준의 선정과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3기. 용암리 영세불망비군(龍岩里永世不忘碑群)는 해남군 문내면 용암리에 있다. 조선 후기 해남현감 신림(申林), 해남군수 홍건(洪建), 경리사 민영준(閔泳駿)의 선정과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3기 영세불망비이다. 경리사(經理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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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용암리에 있는 조선 후기 순찰사 김성근과 수상국 민경호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세운 2기의 비. 용암리 휼민송덕비군(龍岩里恤民頌德碑群)은 전라도순찰사 및 수사로 조선 후기 해남에서 활동한 김성근(金聲根), 민경호(閔敬鎬)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1883년(고종 20) 1월 11일[계사]조에 “김성근(金聲根)을 전라도 관찰사(全羅道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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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계곡면 여수리에 있는 조선 후기 순천김씨 사우. 용연사(龍淵祠)는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 막하에서 명량대첩에 참전하여 공을 세운 김정언, 김정윤 형제를 배향한 사우이다. 정확한 건립 연대는 알 수 없다. 김정언(金廷彦)의 자는 국보(國甫), 본관은 순천이다. 동생 김정윤과 함께 효성과 절의로 이름이 높았다. 임진왜란 때 전라우수사 유형(柳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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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신우를 시조로 하고 이영화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해남군의 세거 성씨. 원주이씨(原州李氏)는 해남군의 세거 성씨 가운데 하나로, 입향지인 마산면을 중심으로 해남 각지에 집성촌을 이루어 살고 있다. 원주 이씨의 시조 이신우(李申佑)는 신라 때 양산 촌장을 지낸 표암공 이알평(李謁平)의 원손이며, 고려 문종 때 병부상서를 지내고 경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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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에 있는 향교, 서원, 사우, 누각, 정자, 정려각 등 유교 건축. 전라남도 해남 지역은 유교 건축(儒敎建築)은 향교, 서원, 사우, 누각, 정자, 정려각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향교는 지방 교육 기관으로 제사와 교육이 주된 기능이며 관아와 비교되는 건조물이다. 서원과 사우는 제사 기능에서는 동일하지만 서원은 교육 기능이 있다. 그런데 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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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해남 출신의 문신. 윤광계(尹光啓)[1559~?]는 많은 시문을 남겨 해남윤씨(海南尹氏) 집안 문인학풍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해남의 귤정(橘亭) 윤구(尹衢), 귤주(橘洲) 민여안(閔與顔)과 함께 3귤로도 불리고 있다. 윤광계의 자는 경열(景說), 호는 귤옥(橘屋)이며, 본관은 해남(海南)이다. 해남윤씨 득관조인 윤효정(尹孝貞)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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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해남 출신의 문인화가. 윤덕희(尹德熙)[1685~1766]의 본관은 해남(海南)이며 자는 경백(敬伯), 호는 낙서(駱西)·연포(蓮圃)·연옹(蓮翁)·현옹(玄翁)이다. 아버지는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이며 어머니는 전주이씨(全州李氏)이다. 부인은 심채원의 딸 청송심씨(靑松沈氏)이며, 문인화가 윤용(尹愹)이 아들이다. 윤덕희는 1685년(숙종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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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통호리와 북평면 영전리에서 윤선도와 관련하여 전해 오는 이야기. 해남군 송지면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윤도산(崙道山)[284m]이라 불리는 산이 있다. 「윤도산 샘물과 윤선도」는 조선 후기의 문인 윤선도(尹善道)[1587~1671]가 산 정상에 있는 샘물을 마신 후 말라 버렸다는 이야기이다. 「윤도산 샘물과 윤선도」는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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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해남 출신의 문인이자 화가. 윤두서(尹斗緖)[1668~1715]는 정선(鄭敾), 심사정(沈師正)과 함께 조선 후기 삼재로 손꼽힌 문인화가이다. 당시 중국의 영향 속에 있던 회화의 굴레에서 벗어나 사실주의와 풍속화라는 새로운 화풍을 개척하였다. 윤두서의 본관은 해남(海南)이며 자는 효언(孝彦), 호는 공재(恭齋) 또는 종애(種涯)이다. 고산(孤山) 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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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연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화가 공재 윤두서가 자신의 모습을 그린 회화 작품. 「윤두서자화상(尹斗緖自畵像)」은 조선 후기 선비 화가 공재 윤두서(尹斗緖)[1668~1715]가 그린 자화상으로 1987년 12월 26일 국보 제240호로 지정되었다. 윤두서는 고산 윤선도[1587~1671]의 증손으로 자는 효언(孝彦), 호는 공재(恭齋)이다. 17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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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해남 출신의 문신이자 시조작가. 윤선도(尹善道)[1587~1671]는 해남윤씨(海南尹氏)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로, 여러 벼슬을 역임한 문신이자 국문학의 최고봉으로 평가받는 문인이다. 윤선도의 본관은 해남(海南)이며 자는 약이(約而), 호는 고산(孤山)·해옹(海翁), 시호는 충헌(忠憲)이다. 아버지는 예빈시부정(禮賓寺副正) 윤유심(尹唯深)이고 어머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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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연동리에 있는 조선 중기 고산 윤선도가 남긴 수적 및 관계 문서. 윤선도 종가 문적(尹善道宗家文籍)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국문학사의 최고 시문학인으로 평가받는 고산 윤선도(尹善道)[1587~1671] 가 직접 손으로 쓰거나, 엮어 펴낸 수적들과 관계된 여러 문헌들을 일괄하여 1968년 12월 19일 보물 제482호로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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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해남에서 활동했던 문인화가. 윤용(尹愹)[1708~1740]의 본관은 해남(海南)이며 자는 군열(君悅), 호는 청고(靑皐)·유헌(萸軒)·소선(蕭仙)이다. 할아버지는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이며 아버지는 윤덕희(尹德熙), 어머니는 심채원의 딸 청송심씨(靑松沈氏)이다. 부인은 이명우(李明遇)의 딸 성산이씨(星山李氏)이다. 윤용은 1708년(숙종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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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해남 출신의 문인. 윤이후(尹爾厚)[1636~1699]의 본관은 해남(海南)이며 자는 재경(載卿), 호는 지암(支菴)이다. 할아버지는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1587~1671]이고, 아버지는 윤의미(尹義美), 어머니는 동래정씨(東萊鄭氏)이다. 윤이후가 태어나기 열흘 전 아버지 윤의미가 스물네 살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어머니 동래정씨도 남편을 따라 죽으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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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해남 출신의 문신. 윤인미(尹仁美)[1607~1674]의 본관은 해남(海南)이며 자는 자수(子壽), 호는 치헌(癡軒)이다. 아버지는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1587~1671]이며, 어머니는 윤돈(尹暾)의 딸 남원윤씨(南原尹氏)이다. 부인은 구봉(九峯) 유항(柳恒)[1574~1647]의 딸 전주유씨(全州柳氏)이다. 형제로는 윤의미(尹義美)와 윤예미(尹禮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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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해남윤씨 가문의 천주교인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천주교 순교자. 윤지충[1759~1791]의 본관은 해남이며, 세례명은 바오로이다. 해남윤씨 출신으로 증조부가 윤두서(尹斗緖)이다. 아버지는 윤경(尹憬)이며, 어머니는 권기징(權沂徵)의 딸 안동권씨(安東權氏)이다. 부인은 이종연(李宗延)의 딸 연안이씨(延安李氏)이다. 정약용(丁若鏞)과는 외사촌간이며, 1801년 신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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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해남 출신의 문신. 이극인(李克仁)[1602~1641]의 본관은 연안(延安)이며 자는 사안(士安), 호는 송정(松汀)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국형(李國衡), 할아버지는 호조판서 이후백(李後白)[1520~1578]이다. 아버지는 별좌(別坐)를 지낸 이복길(李復吉)이다. 이극인의 형제는 이영인(李榮仁)·이우인(李友仁)·이호인(李好仁)이다. 종형(從兄) 이수인(李壽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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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해남 출신의 효자. 이문길(李文吉)[1551~?]의 본관은 원주(原州)이며, 강릉부사를 지낸 이영화[1430~1517]의 손자이다. 아들은 이광일(李光一)이며, 손자 이신신(李愼信) 또한 효행으로 유명하다. 이문길은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여 『소학(小學)』의 가르침대로 부모를 섬겼다. 아버지가 병에 걸려 멧돼지고기를 먹고 싶어 하여 멧돼지고기를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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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해남에 있었던 전라우수영의 수사로 부임하여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무신. 이순신(李舜臣)[1545~1598]은 조선 역사에서 가장 큰 변란을 겪어야 했던 임진왜란 당시 삼도수군통제사로서 바다를 지켜 내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순신의 본관은 덕수(德水)이며 자는 여해(汝諧), 시호는 충무(忠武)이다. 고려 때 중랑장을 지낸 이돈수(李敦守)의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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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해남 용정사에 배향된 무신. 이억기(李億祺)[1561~1597]는 임진왜란 당시 전라우수사로서 전라좌수사 이순신(李舜臣), 경상우수사 원균(元均) 등과 합세하여 왜적을 격파하였다. 이억기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경수(景受), 시호는 의민(毅愍)이다. 심주군 이연손(李連孫)의 아들이다. 이억기는 1577년(선조 10) 무과에 급제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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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해남 출신의 풍수가. 이의신(李懿信)[?~?]은 17세기 전반에 활동했던 당대 최고의 풍수가였다. 해남군 마산면 맹진리 태생으로 관련 설화가 많이 전한다. 선조 때부터 왕가의 묏자리를 잡는 데 큰 역할을 했고, 선조는 이의신에게 벼슬을 내려 자신의 옆에 붙잡아 두었다. 광해군 때는 교하 천도설로 조정을 발칵 뒤집기도 하였다. 이의신의 본관은 원주(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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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이진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이진진성 만호들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세운 4기의 비. 이진리 만호비군(梨津里萬戶碑群)은 해남군 북평면 이진리에 있다. 조선 후기 이진진성 만호 박경환(朴慶煥), 최상규(崔祥奎), 김관길(金寬吉)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세운 4기의 영세불망비이다. 이진리 만호비군은 박경환, 최상규, 김관길이 수군진성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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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이진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석축성. 이진성지(梨津城址)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석축성으로 해남군 북평면 이진리에 있다. 1598년 이진진이 설치되면서 성을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진성지는 1988년 12월 21일 전라남도 기념물 제120호로 지정되었다. 이진진은 1598년(선조 31) 설진하여 1627년(인조 5) 만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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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해남 출신의 효자. 임달유(任達儒)[1829~1888]의 본관은 장흥(長興)이며 자는 영유(永有), 호는 묵암(默巖)이다. 임달유는 1829년(순조 29) 해남군 계곡면 당산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친구들과 우애가 깊었고 커서는 효성이 지극하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지극정성으로 시묘살이를 하였는데, 서리나 우박이 내리고 비바람이 몰아쳐도 피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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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부터 1598년까지 2차에 걸쳐서 조선에 침입한 왜군과의 전쟁. 임진왜란(壬辰倭亂)은 2차례에 걸쳐 일어나는데 1차 침입이 임진년에 일어났으므로 ‘임진왜란’이라 부르며, 2차 침입이 정유년에 있었으므로 ‘정유재란’이라 한다. 임진왜란은 1592년(선조 25) 5월 23일부터 1598년(선조 31) 12월 16일까지 7년간 조선과 명나라, 일본 사이에서 일어난 국제 전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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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해남현에서 작성한 호적대장. 조선시대는 3년에 한 번씩 호구조사를 실시하였고, 각 호마다 제출한 호구단자(戶口單子)를 근거로 호적대장을 만들었다. 해남현과 같은 지방에서는 총 3부의 호적대장을 만들어 1부는 호조(戶曹), 다른 1부는 감영(監營)에, 마지막 1부는 해당 관부에서 보관하였다. 『전라도해남현호적대장』은 해남현에서 작성하였다. 1639년(인조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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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 대산리에 있는 1681년 건립된 정운 관련 사우. 정운 충신각(鄭運忠臣閣)은 임진왜란 때 전라좌도수군절도사 이순신의 선봉으로 왜군과 싸우다 부산 몰운대(沒運臺)에서 전사한 정운(鄭運)[1543~1592] 장군의 충렬을 기리기 위해 1608년(선조 41) 조정에서 명정(命旌)을 내렸고 1681년(숙종 7) 충신각을 출생지인 대산마을에 건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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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해남 출신의 효자. 조석창(曹錫昌)[?~?]의 본관은 창녕(昌寧)이며, 그 외 자세한 가계는 전하지 않는다. 조석창은 부모에게 효성이 지극하였을 뿐 아니라 부모가 죽은 뒤에는 묘 앞에서 3년간 시묘살이를 하였다. 어느 날 조석창은 조상의 묘장(卯杖)[정월의 첫 묘일(卯日)에 부정을 방지하는 주술 도구로서 이용된 막대기]을 만들어 옥매산으로 운반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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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해남 출신의 문신 윤이후가 남긴 일기. 『지암일기』는 윤이후가 1692년(숙종 18) 1월 1일부터 1699년(숙종 25) 9월 8일까지 약 8년 동안 쓴 일기이다. 윤이후(尹爾厚)[1636~1699]의 본관은 해남(海南)이며 자는 재경(載卿), 호는 지암(支庵)이다. 1679년(숙종 5)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1689년(숙종 15) 증광시(增廣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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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해남 출신의 효자. 천인혁(千寅赫)[1833~?]의 본관은 영양(英陽)이다. 아버지는 천극로(千極老)이며, 양어머니는 김해김씨(金海金氏)이다. 그 외 가족관계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 천인혁은 부모를 효성으로 모셨으며, 아버지 천극로가 일찍 사망한 뒤 할아버지상을 당하자 지극정성으로 시묘하였다. 이때 슬퍼하며 흘린 눈물로 인해 풀이 말랐다고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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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4년 김정호가 만든 『청구도』에 수록된 해남 지역 지도. 『청구도(靑邱圖)』는 1834년(순조 34) 고산자(古山子) 김정호(金正浩)[1804~1866]가 만든 우리나라 대축척지도로, 건곤(乾坤) 두 책을 상하로 연결하면 전국도가 된다. 전국을 남북으로 29층, 동서로 22판을 구분하여 방안 눈금으로 나누어 그렸다. 방안 하나는 남북이 100리, 동서가 70리가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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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금평리에 있는 조선시대 해남 화원목장의 감목관들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세운 8기의 비. 청룡리 감목관비군(靑龍里監牧官碑群)는 해남군 화원면 금평리에 있다. 조선시대 해남 화원목장의 감목관 김여생, 우순필, 변지화, 김용섭, 송휘로, 오준신, 신제극 선정을 기리기 위해 세운 8기의 비를 말한다. 김여생, 우순필, 변지화, 김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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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해남 대흥사에서 활동하며 대흥사 13대 종사를 지낸 승려. 초의선사(草衣禪師)[1786~1866]의 본관은 인동(仁同)이며 속명은 장의순(張意恂), 자는 중부(中孚), 법호는 초의, 법명은 의순(意恂)이다. 조선 후기 해남 대흥사에서 활동한 대흥사 13대 종사이며 다성(茶聖)으로도 불린다. 초의선사는 1800년(정조 24) 나주 운흥사(雲興寺)로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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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 대산리에 있는 1652년 건립된 정운 장군 사우. 충절사(忠節祠)는 조선시대 임진왜란 공신 정운(鄭運)[1543~1592] 장군을 배향한 사우이다. 정운은 무신으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순신 장군의 선봉장이 되어 옥포해전·당포해전·한산도대첩 등의 여러 해전에서 큰 전과를 올렸으며 부산포 몰운대(沒雲臺)에서 순절하였다. 임진왜란 때 경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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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남창리 천태산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 대흥사의 말사. 태영사는 1552년(명종 7)에 창건되었다고 하지만, 문헌 자료는 없다. 창건 당시는 이름이 칠성암(七星庵)이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폐허가 되었으며, 이후 중건을 거듭하였다. 태영사에서 가까운 남창항의 선주와 주민들이 출항할 때 재난 방지를 위해 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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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대흥사 경내에 있는 1789년 건립된 사우. 표충사(表忠祠)는 임진왜란 당시 나라를 위해 헌신한 서산대사 휴정(西山大師 休靜)[1520~1604]을 기리기 위하여 정조의 명령으로 1789년에 건립한 사우이다. 사찰에서 보기 드문 솟을삼문을 갖추었다. 서산대사의 제자인 사명대사 유정[1544~1610]과 뇌묵당 처영의 진영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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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해남 대흥사 천불전 조성에 관여한 승려. 풍계(楓溪) 현정(賢正)[?~?]은 광주 원효사와 쌍봉사에서 주로 주석하였던 화승(畫僧)이며, 스승은 대흥사의 제9대 대강사인 금주(錦洲) 등혜(等慧)이다. 해남 대흥사 천불전 조성에 기여하였다. 풍계 현정은 1804년(순조 4) 해남 서동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의 개금불사에 수화사로 처음 등장하여 19세기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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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정을 시조로 하고 정운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해남군의 세거 성씨. 하동정씨(河東鄭氏)는 신라 말 고려 초의 정치적 혼란을 틈타 경상남도 하동 지역의 호족으로 성장하였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전라남도 해남군의 세거 성씨 가운데 하나이며, 해남 입향조는 정운(鄭運)[1543~1592]이다. 하동정씨는 본관을 같이하면서 계통이 다른 세 개의 파가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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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학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전라우수사, 우후, 관찰사, 현감 등의 선정과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30기의 비군. 학동리 공적비군(鶴洞里功績碑群)은 해남군 문내면 학동리에 있다. 조선 후기 전라우수사, 우후, 관찰사, 현감 등의 선정과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으로 30기가 남아 있다. 학동리 공적비군은 전라우수사 이광영(李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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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학동리 옛 충무사 입구에 있는 조선 후기 관찰사 정건조, 이호준, 이병문의 선정과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3기의 비. 학동리 관찰사공적비군(鶴洞里觀察使功績碑群)은 해남군 문내면 학동리 옛 충무사 입구에 있다. 조선 후기 관찰사(觀察使) 정건조(鄭健朝), 이호준(李鎬俊), 이병문(李秉文)의 선정과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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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학동리 옛 충무사 입구에 있는 조선 후기 전라우수사 비 19기와 우후 비 1기. 학동리 수사공적비군(鶴洞里水使功績碑群)은 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학동리 옛 충무사 입구에 있다. 전라우수사 공적비 19기, 수군우후(水軍虞侯) 공적비 1기가 있다.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는 조선시대 각 도의 수군을 효율적으로 지휘, 감독하기 위하여 두었던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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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학동리 옛 충무사 입구에 있는 조선 후기 해남현감 및 군수의 선정과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4기의 비. 학동리 현감·군수공적비군(鶴洞里縣監郡守功績碑群)은 조선 후기 해남현감 및 군수를 지낸 강열(姜說), 김성택(金聖澤), 이용중(李容中), 이용우(李容愚)의 선정과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4기의 비석이다. 학동리 현감·군수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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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 백포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윤씨 문중 상류 주택. 해남 공재 고택(海南恭齋古宅)은 조선시대 최고 자화상을 그린 공재 윤두서(尹斗緖)[1668~1715]의 가옥이다. 윤두서는 겸재(謙齋) 정선(鄭敾), 현재(玄齋) 심사정(沈師正)과 함께 조선 후기의 3재로 일컬어지는 선비화가로 고산 윤선도(尹善道) 증손이다. 1670년(현종 11) 건립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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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노송사에 있는 김해김씨 고문서. 노송사(老松祠)는 1774년(영조 50)에 매헌 김기손(金驥孫)의 학덕과 후손인 김안방(金安邦)[1553~?] 등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창건된 김해김씨(金海金氏) 문중 사우이다. 처음에는 창의사(倡義祠)로 불렸으나 1868년(고종 5) 서원 철폐령에 따라 훼철된 이후 1889년(고종 26) 옛터에 다시 설치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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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두륜산에 있는 조선 후기 대흥사의 중심 불전. 해남 대흥사 대웅보전(海南大興寺大雄寶殿)은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두륜산에 있는 조선 후기 대흥사의 중심 불전이다. 2008년 9월 19일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96호로 지정되었다. 해남 대흥사 대웅보전은 대흥사 경내에 있다. 대흥사 북원(北院)의 중심 불전이자 대흥사 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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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두륜산 대흥사에 소장된 서산대사의 유물. 해남 대흥사 서산대사유물(海南大興寺西山大師遺物)은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두륜산 대흥사에 소장된 서산대사의 유물을 말한다. 청허휴정(淸虛休靜)[1520~1604]은 오랫동안 묘향산에 살았으므로 세상 사람들이 서산대사(西山大師)라고 불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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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두륜산 대흥사에 소장된 서산대사의 유물. 해남 대흥사 서산대사 의발 등 유물 일괄(海南大興寺西山大師衣鉢等遺物一括)은 해남 대흥사에서 소장하고 있는 서산대사의 유품과 유물들이다. 의발은 임진왜란 이전부터 사용하던 것이고, 교지(敎旨)는 1788년(정조 12) 정조가 내린 것이다. 청허휴정(淸虛休靜)[1520~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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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두륜산 대흥사 승탑원에 있는 1647년경 건립된 승탑. 해남 대흥사 서산대사탑(海南大興寺西山大師塔)은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두륜산 대흥사 승탑원에 있다. 1647년(인조 25)경 건립되었으며 1974년 12월 26일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57호로 지정되었다가 2002년 9월 25일 보물 제1347호로 승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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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대흥사 대웅보전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시대 목조 삼존불상. 해남 대흥사 석가여래삼불좌상(海南大興寺釋迦如來三佛坐像)은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두륜산의 대흥사 대웅보전에 봉안되어 있다. 조선시대 목조 삼존불상으로 2015년 3월 4일 보물 제1863호로 지정되었다. 해남 대흥사 석가여래삼불좌상의 본존인 석가여래좌상은 머리와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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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대흥사 대웅보전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 후기 불화. 「해남 대흥사 영산회 괘불탱(海南大興寺靈山會掛佛幀)」은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두륜산 대흥사 대웅보전에 있다. 1764년 색민(色旻)을 비롯한 금어(金魚) 등 26명이 공동 제작하였다. 2008년 3월 12일 보물 제1552호로 지정되었다. 「해남 대흥사 영산회 괘불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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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두륜산 대흥사에 있는 조선시대 불전. 해남 대흥사 천불전(海南大興寺千佛殿)은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두륜산 대흥사에 있다. 해남 대흥사 천불전은 천불을 모신 전각이다. 해남 대흥사 천불전은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에 있는 대흥사의 경내 대웅전을 기준으로 남원(南院)의 중심에 있다. 1823년 『대둔사지(大芚寺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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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대흥사 청허당에 승려 청허의 행적을 기록하여 건립한 비. 해남 대흥사 청허당 휴정대사비(海南大興寺淸虛堂休靜大師碑)는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대흥사 청허당에 있는 비석이다. 승려 청허휴정(淸虛休靜)[서산대사]의 행적을 기록한 것으로 1647년 건립하였다. 청허대사는 1520년 평안남도 안주시에서 태어나 1604년 묘향산 원적암에서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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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대흥사 부도전에 1692년 승려 풍담의심의 행적을 기록하여 건립한 비. 해남 대흥사 풍담당 의심대사비(海南大興寺楓潭堂義諶大師碑)는 해남군 삼산면 대흥사 부도전에 있다. 승려 풍담의심의 행적을 기록한 것으로 1692년 건립하였다. 해남 대흥사 풍담당 의심대사비는 풍담의심의 제자들이 기오당(寄傲堂) 김우형(金宇亨)에게 비문과 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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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 덕송리에 1871년 건립된 명나라 진린 장군과 후손의 위패를 모신 사당과 별묘. 해남 덕송리 황조별묘(海南德松里皇朝別廟)는 조선시대 정유재란 때 중국 명나라에서 조선 구원군 도독으로 왔던 진린(陳璘)[1543~1607] 장군과 아들 진구경(陳九經), 손자 진영소(陳泳素), 증손자 진석문(陳碩文)의 위패를 모시고 향사(享祀)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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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 관춘리 도장사 대웅전에 봉안된 조선 후기 목조 불상. 해남 도장사 본존불(海南道場寺本尊佛)은 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 관춘리 도장사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다. 1648년 조성된 목조 불상으로 2001년 11월 7일 해남군 향토문화유산 제7호로 지정되었다. 해남 도장사 본존불은 목조석가여래좌상으로 상의 높이는 109㎝, 무릎폭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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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동외리에 있는 조선시대 명량대첩 기념비. 해남 명량대첩비(海南鳴梁大捷碑)는 1688년(숙종 14) 명량대첩(1597)을 승리로 이끈 충무공 이순신(李舜臣)[1545~1598]의 공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비이다. 1942년 3월 일본에 의해 강제로 철거되어 경복궁 근정전 뒤뜰에 묻힌 것을 1945년 해방이 되자 우수영 유지들이 명량대첩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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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서정리 달마산에 있는 조선 후기 미황사의 중심 불전. 해남 미황사 대웅전(海南美黃寺大雄殿)은 해남군 송지면 서정리 달마산에 있는 조선 후기 미황사의 중심 불전이다. 1988년 4월 1일 보물 제947호로 지정되어 미황사에서 관리하고 있다. 미황사는 달마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해남 미황사 대웅전은 달마산을 배경으로 입지한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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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서정리에 있는 미황사의 명부전에 조성 봉안된 조선시대 불상. 해남 미황사 명부전 목조 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海南美黃寺冥府殿木造地藏菩薩三尊像十王像一括)은 해남군 송지면 서정리에 있는 미황사의 명부전에 조성 봉안된 조선시대 불상이다. 2015년 8월 6일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324호로 지정되어 미황사에서 관리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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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서정리 미황사에 있는 조선시대 불전. 해남 미황사 응진당(海南美黃寺應進堂)은 해남군 송지면 서정리 달마산 미황사에 있는 조선시대 불전이다. 1993년 11월 19일 보물 제1183호로 지정되어 미황사에서 관리하고 있다. 응진당은 석가모니를 본존으로 모시면서도 제자들에 대한 신앙 세계를 함께 묘사한 사찰 당우이다. 미황사는 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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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서정리 해남 미황사 응진당에 봉안하기 위하여 조성한 조선 후기 불상군. 해남 미황사 응진당 목조 석가여래삼존상 및 나한상 일괄(海南美黃寺應眞堂木造釋迦如來三尊像-羅漢像一括)은 해남군 송지면 서정리 해남 미황사 응진당에 봉안하기 위하여 조성한 조선 후기 불상군이다. 2015년 8월 6일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325호로 지정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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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금풍리에 있는 서동사 대웅전에 봉안된 조선 후기 목조 불상. 해남 서동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海南瑞洞寺木造釋迦如來三佛坐像)은 해남군 화원면 서동사 대웅전에 있다. 1650년 조성되었으며 1804년 중수되었다. 2011년 6월 21일 보물 제1715호로 지정되었다. 해남 서동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은 본존인 석가여래불은 승각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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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마산면 장촌리에 있는 조선시대 건립된 여흥민씨 부조묘. 해남 여흥민씨 부조묘(海南驪興閔氏不祧廟)는 해남군 마산면 장촌리에 있다. 민신(閔伸), 민보창(閔甫昌), 민보해(閔甫諧), 민보석(閔甫釋) 등 여흥민씨 4부자가 배향되어 있으며, 고려 중엽 이후 사당을 지으면서부터 조성되었다. 해남군의 부조묘 중 국가에서 명을 받은 부조묘는 해남 여흥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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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용정리에 있는 조선 후기 충신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사우. 해남 용정사(海南龍井祠)는 임진왜란 때 충무공 이순신[1545~1598]을 도와 용맹을 떨친 충경공(忠景公) 유형(柳珩)[1566~1615], 수사(水使) 이억기(李億祺)[1561~1597], 충의공(忠毅公) 이유길(李有吉)[?~?], 참의(參議) 이계년(李桂年)[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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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 구시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윤선도가 머물렀던 유적지. 해남 윤선도 유적(海南尹善道遺蹟)은 조선 후기 문신이자 시인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1587~1671]가 1642년(인조 18) 54세 때 전라남도 해남군 금쇄동과 수정동, 문소동의 첩첩산중에 머물면서 자연을 이용해 연못과 정자 등을 조영한 조선시대 대표적인 별서 원림 지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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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연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화가 공재 윤두서의 서화첩. 해남윤씨 가전 고화첩 일괄(海南尹氏家傳古畵帖一括)은 윤두서의 아들 낙서 윤덕희(尹德熙)가 윤두서가 세상을 떠난 지 4년 만인 1719년 『가전보회』, 『윤씨가보』 2권의 화첩으로 만든 것과 『동국여지도(東國輿地圖)』, 『일본여도(日本輿圖)』를 일괄로 묶은 것으로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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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대 해남군 삼산면 충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무신 이유길의 공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 해남 이유길 유허비(海南李有吉遺墟碑)는 이유길(李有吉)[?~?]이 임진왜란 때 명량대첩에서 세운 공과 1619년 건주(建州) 출병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 해남 이유길 유허비가 세워진 해남군 삼산면 충리는 이유길의 출생지이다. 이유길은 17세에 임진왜란을 겪는데 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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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연동리에 있는 1949년 건립된 박심문을 배향한 재실. 해남 죽음사 영모재는 죽음사(竹陰祠)라는 사당에 제를 모시기 위해 건립한 재실이다. 중앙에 3칸의 대청을 두어 제를 모시기 위한 준비 공간으로 활용하였고, 양측 단부에 온돌방을 두어 생활 공간으로 한 전형적인 남부 지방 재실 형태이다. 2013년 8월 1일 해남군 향토문화유산 제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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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 백포리 두모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나주임씨 효열 정려. 해남 현산면 효열부 나주임씨 정려(海南縣山面孝烈婦羅州林氏旌閭)는 효와 열을 겸비한 나주임씨의 덕성을 기리기 위해 암행어사 성수묵(成守黙)의 특명으로 1866년(고종 3) 중건된 건물이다. 해남 백포리 임부인 효열비각(海南白浦里林婦人孝烈碑閣)이라고도 부른다. 나주임씨는 전라남도 진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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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연동리에 있는 1791년 간행된 고산 윤선도의 시문집 목판. 해남 고산유고 목판 일괄(海南孤山遺稿木板一括)은 조선 중기의 문신인 고산 윤선도(尹善道)[1587~1671]의 시문집으로 1791년(정조 15) 전라감사 서유린이 정조의 명을 받아 간행하였다. 이후 1798년(정조 22)에 전라감사 서정수가 윤선도의 본가에 간직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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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마산면 맹진리에 있는 조선 초기 죽산현의 향도와 주민들이 매향 의식을 행하고 새긴 암각 비문. 해남 맹진리 암각 매향비는 해남 맹진리 만대산 장군바위에 있는 조선시대 초기 1406년에 세운 매향 암각비이다. 매향비 또는 매향 암각은 매향을 하면서 매향 연유와 시기, 장소, 관련된 사람이나 집단을 기록하는 기록물을 말하는데 돌 비석이나 바위에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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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백야리에 있는 1807년 건립된 가옥. 해남 민정기 가옥은1807년(순조 7) 민정기의 6대조 민형현(閔亨顯)이 건립한 가옥이다. 현재 안채, 사랑채, 사당, 문간채 등 조선 후기 상류층의 주생활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한편 청사정(淸斯亭)이란 당호를 갖고 있는 사랑채는 여흥이씨(驪興李氏) 집안에서 1670년대에 건립된 것으로 전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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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계곡면 방춘리에 있는 조선 후기 순천김씨 강학소. 해남 방춘정(海南芳春亭)은 1871년(고종 8) 김정정(金鼎淨)과 김문익(金文翼)이 주도하여 건립한 순천김씨 강학소이다. 원래 방춘정에는 절제 김종서, 월담 김승주, 북저 김류, 남은 김효우를 비롯한 순천김씨 선대를 배향하였던 삼상사(三相祠)[1808년 건립]가 있었다. 1868년(고종 5) 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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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에 세거하는 해남윤씨 가문에서 소장하고 있는 고문헌 자료. 해남윤씨(海南尹氏) 녹우당(綠雨堂) 가문은 우리나라 단일 종가로는 가장 많은 문헌자료들을 소장하고 있다. 고려 말부터 생산되기 시작한 문서들은 16세기 윤효정(尹孝貞)[1476~1543] 대를 거쳐 윤구(尹衢)[1495~?], 윤의중(尹毅中)[1524~1590] 등 집안의 여러 인물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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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1년 해남 지역과 관련된 지리 정보들을 모아 발간한 읍지. 『해남읍지(海南邑誌)』[1791]는 1791년(정조 15) 편찬된 해남현(海南縣), 옥과현(玉果縣), 남평현(南平縣), 화순현(和順縣), 창평현(昌平縣) 읍지의 합본이다. 『해남읍지(海南邑誌)』[1791]는 해남현에서 편찬하였다. 『해남읍지』[1791]는 서문과 발문이 없어서 정확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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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해남에서 편찬한 읍지. 『해남지(海南誌)』의 편찬 시기는 기재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해남지』의 선생안 마지막 두 번째 인물인 정간(鄭杆)[1733~1813]이 『정조실록(正祖實錄)』 1795년 5월 22일 자 기사에 해남현감으로 기록된 것으로 보아 1795년 이후에 편찬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해남지』는 해남현에서 작성하였다. 『해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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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0년대에 제작된 『해동지도』에 수록되어 있는 해남 지역 지도. 『해동지도(海東地圖)』는 1750년대 초에 제작된 회화식 군현지도첩이다. 「조선전도」, 「도별도」, 「군현지도」 외에 세계지도인 「천하도」, 외국 지도인 「중국도」, 「황성도」, 「북경궁궐도」, 「왜국지도」, 「유구지도」, 군사용 지도인 「요계관방도(遼薊關防圖)」 등이 포함되어 있다.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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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남창리에 있었던 조선 후기 누정. 해월루는 해남군 북평면 남창리에 있으며 조선 시대에 제주를 왕래하는 사객들이 바람을 기다리는 건물이다. 영암군에서는 사객을 뒷바라지하기 위하여 남창(南倉)과 6방을 설치하였다. 해월루는 1821~1850년 사이에 지어졌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며 순조 때 개조되었다고 한다. 5칸 건물이었던 해월루는 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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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 해창리에 있었던 조선 후기 포구. 해창(海倉)은 조선 후기에 해남현의 전세를 보관하고 출발하는 포구였으나 사실상 해남현의 관문 역할을 하였다. 전세나 대동미를 싣고 한양으로 출발하였다. 17세기 중반에 대동법을 실시하게 되면서 해남현에 설치한 세곡 창고였고, 동시에 세곡을 싣고 한양으로 출발하는 포구이기도 하였다. 전세와 대동미를 2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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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해리에 있는 조선 후기 교육기관. 해촌서원(海村書院)은 최부(崔溥)[1454~1504], 임억령(林億齡)[1496~1568], 유희춘(柳希春)[1513~1577], 윤구(尹衢)[1495~?], 윤선도(尹善道)[1587~1671], 박백응(朴伯凝)[1525~?] 등 해남 출신 인물 6현을 배향하고 있다. 1868년 훼철되었다가 19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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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해남의 호수와 인구수를 기록한 호구 통계집. 『호구총수(戶口總數)』 「해남(海南)」의 저자는 확인하기 어려우나 책의 내용으로 볼 때 1789년(정조 13) 규장각(奎章閣)에서 한성부의 초기(草記)를 기초로 편집·간행한 것으로 보인다. 『호구총수』 「해남」 은 조선 후기 해남의 호수와 인구수를 파악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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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제작된 『호남지도』에 수록되어 있는 해남 지역 지도. 『호남지도(湖南地圖)』의 특징은 거리와 방향을 정확하게 그리기 위해 1리 간격의 눈금선[방안(方眼)] 위에 지도를 그린 것이다. 일부 고을의 지도에 비변사 인장이 찍혀 있어서 ‘비변사인 방안지도(備邊司印方眼地圖)’로도 불리고 있다. 2008년 보물 제1588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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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해남에 있던 전라우수영의 수군절도사 구장화가 중앙으로 올린 공문서를 편집한 책. 『호우수영지(湖右水營誌)』는 일반적인 읍지의 형식을 따르고 있지 않으며, 전라우수사가 각 사안에 관해 중앙에 보낸 공문서를 편집한 형태를 띠고 있다. 『호우수영지』는 당시 전라우수사로 재임하였던 구장화(具鏘和)가 작성하였다. 『호우수영지』는 1850년 9월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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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흥사에서 활동한 해남 출신 승려. 화악(華岳) 문신(文信)[1629~1707]은 1629년(인조 7) 해남군 화산면에서 태어났다. 어린 나이에 대둔사(大芚寺)[현 대흥사의 옛 이름]로 출가하였다. 취여(醉如) 삼우선사(三愚禪師)의 화엄종지(華嚴宗旨)를 듣고 깨달음을 얻었다. 3년 동안 낮에는 대둔사의 토목공사를 돕고 밤에는 불서를 읽으며 지내다가 전국을 떠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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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금평리에 있는 조선시대 암행어사 정만석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 화원 정어사 철비(花源鄭御史鐵碑)는 해남군 화원면 금평리에 있는 비석으로 암행어사 정만석(鄭晩錫)[1758~1834]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정만석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성균관전적·병조참의 등을 역임한 후 1794년(정조 18) 호남·호서 암행어사로 파견되었다. 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