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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당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301165
한자 -堂
영어공식명칭 Spit Shrine
이칭/별칭 춤당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남도 해남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송기태
[상세정보]

[정의]

전라남도 해남 지역에서 산의 고갯길을 넘을 때 침을 뱉어 액막이를 하는 장소.

[개설]

해남군 일대에는 고갯길 정상이나 마을 입구에 돌이나 솔가지를 모아 놓은 큰 무더기가 있어 그곳을 지날 때면 침을 뱉음으로써 두려움을 떨쳐내고 잡귀를 쫓아내었는데, 이 장소가 침당 또는 춤당이다. 사투리로 입 속의 침을 춤이라고 하는데, ‘침[춤]을 뱉는 당’이라는 뜻에서 침당이라 하였다. 침당에 침을 뱉으면서 “퉤, 고시라”라고 외치는 것으로 보아 고수레 풍속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

[연원 및 변천]

침당은 침을 뱉으며 “고시라”라고 외친다는 점에서 고수레 풍속과 관련된다. 고수레 풍속은 민간의 신앙 관습으로, 음식을 떼어놓거나 소금을 뿌리거나 침을 뱉으며 “고수레” 또는 “고시레”라고 외쳤던 일을 일컫는다. 고수레의 유래에 대해서는 관련 설화가 다수 전하며, 기록으로는 조선 후기 최영년(崔永年)이 지은 『해동죽지(海東竹枝)』 상편 ‘고시래’에 “야사에 이르기를, 단군 때 고시 씨가 농사를 가르쳐 준 은공을 잊지 않고, 지금까지 농부가 들에서 밥을 먹을 때 한술 떼어 던지며 고시래라고 하고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高矢來 野史云 檀君時 有高矢氏 闢草萊拓里 以敎稼穡 至今 田民餉于田間 先以一匙飯 先號高矢來 而祭之].”라고 유래를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고수레 전통은 풍년 농사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음식을 떼어 놓는 것에서 비롯되어 잡귀나 액운을 물리치는 액막이의 의미가 더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신당/신체의 형태]

침당은 돌과 솔가지를 모아 놓은 큰 무더기다. 해남군 송지면의 경우, 구석마을에서 월송시장으로 가는 재에 크게 형성되어 있었고, 어란마을로 넘어가는 재, 현안마을에서 금강마을로 넘어가는 물레재, 미야리에서 조산동으로 넘어가는 독고개재 등에도 침당이 있었다. 황산면의 경우, 병온마을 어귀와 원호마을 당개에 서낭나무와 돌무더기를 쌓아놓은 누석단(累石壇) 형태의 서낭당이 있었는데, 이 지역의 서낭당 또한 침당과 유사한 기능을 지니고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절차]

침을 뱉고 지나가는 침당에서 행하는 고수레 풍습은 “고시라” 또는 “고시레”라고 외치는 것이 전부이고 따로 축문이나 경문이 있는 것은 아니다.

침당의 흔적은 송지면황산면 지역에서 발견되는데, 송지면에서는 사람들이 고갯길을 걸어가다가 재에 이르렀을 때 침당에 돌이나 솔가지를 얹고 침을 뱉으며 “퉤, 고시라”라고 하였다. 돌과 솔가지를 놓음으로써 재를 넘어갈 때 생기는 마음의 두려움이나 액을 떨쳐내고, 침을 뱉음으로써 나쁜 기운을 몰아내기 위한 것이었다. 황산면에서는 병온마을 어귀과 원호마을 당개에 서낭나무와 돌무더기로 된 성황당이 있었는데, 주민들은 서낭나무에 저고리 동정이나 오색 헝겊 조각을 걸어 무병장수와 잡귀의 퇴치를 기원하였다. 또한 남리 장을 보러 가는 연자마을, 연호마을, 산이면 등지의 지역민들은 고갯길을 지나가면서 돌무더기에 돌 세 개와 솔가지를 얹어 놓고 침을 세 번 뱉은 다음, 왼쪽 발꿈치로 땅을 세 번 구름으로써 행로의 안전과 행운을 기원하였다.

[현황]

침당의 고수레 풍속은 도로와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않아 고갯길을 걸어서 다니던 시절에 행하던 것으로, 1970년대까지 지속되다가 소멸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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