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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홍탁 이전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300700
한자 吳鉷鐸
영어공식명칭 Oh Hongtak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최성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13년 08월 29일연표보기 - 오홍탁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27년 - 오홍탁 마산공립보통학교 4년 수료
수학 시기/일시 1931년 - 오홍탁 해남공립농업실습학교 졸업
활동 시기/일시 1932년 11월 - 오홍탁 갱생계 조직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34년 2월 - 오홍탁 전남운동협의회 활동
활동 시기/일시 1945년 8월 - 오홍탁 건국준비위원회 해남지부 활동
활동 시기/일시 1946년 11월 - 오홍탁 해남 추수봉기 참여
몰년 시기/일시 1950년 07월 16일연표보기 - 오홍탁 사망
출생지 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 상공리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 상공리 지도보기
학교|수학지 마산공립보통학교 - 전라남도 해남군 마산면 지도보기
학교|수학지 해남공립농업실수학교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지도보기
활동지 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 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일제강점기 전남운동협의회 활동

[정의]

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오홍탁(吳鉷鐸)[1913~1950]은 1913년 8월 29일 해남군 산이면 상공리에서 태어났다. 전남운동협의회에 가입하여 항일 활동을 전개하였으며 광복 후 해남건국준비위원회에서 활동하였다.

[활동 사항]

오홍탁은 1931년 해남공립농업실수학교를 졸업한 후 독서회를 조직하여 농촌계몽 활동을 전개했으며, 농민들의 생존권 확보를 위한 소작쟁의 지도에 적극 참여하였다. 1932년 11월 상공리 산기슭에서 오임탁(吳琳鐸), 박한배(朴漢培) 등과 함께 자금 마련을 목적으로 하는 갱생계(更生契)를 조직하고 사회주의사상 보급과 동지 양성을 위한 방안을 협의하였다.

1933년 9월 오홍탁은 전라남도 순사교습소에 들어가 12월 졸업한 뒤 1934년 1월부터 강진경찰서에서 근무를 시작했으나 2개월 만에 전남운동협의회 사건으로 체포되었다. 전남운동협의회는 혁명적 농민 조합을 결성하여 계급의식을 고취하고 지역 전위 정치조직의 기반을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결성된 항일 단체였다. 해남 출신 김홍배, 완도 출신 황동윤 등이 각자 자기 지역에서 활동하다가 농민운동을 중심으로 한 대중운동 지도 기관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결성된 후 여러 지역으로 확대되었다.

오홍탁이 경찰이 된 이유는 일제의 비밀정보를 탐지할 목적이었고, 근무지인 강진과 고향인 해남을 오가면서 해남군적색농민조합건설준비위원회 산이면 지부장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던 중 검거되었다. 오홍탁은 체포 당시 현역 경찰이었기 때문에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1936년 12월 28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치안유지법과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1년형을 선고받았고, 체포된 지 2년 10개월이나 지났기 때문에 선고 당일 출소하였다.

오홍탁은 광복 후 해남건국준비위원회에서 활동하였으며, 1946년 미군정의 쌀 공출 정책에 반대하는 1946년 해남 추수봉기에도 참여하였다. 한국전쟁 발발 후 후퇴하던 경찰에 의해 예비검속을 당해 1950년 7월 16일 진도 갈매기섬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 사건 때 사망하였다.

전남운동협의회 사건 관련 판결문과 수감 기록이 명확하게 남아 있지만 한국전쟁기 민간인 희생 사건과 관련되어 있어 오홍탁은 아직까지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지 못한 채 논의가 계속 진행 중이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1.01.15 오탈자 해남공립실습학교 → 해남공립실수학교로 재수정
2021.01.11 오탈자 오홍탁의 한자명 洪 → 鉷, ~실수학교 → ~실습학교로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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