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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300484
한자 海南大興寺挽日庵址五層石塔
영어공식명칭 Haenam Daeheungsa Manilamji Five Storied Stone Pagoda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탑과 부도
지역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대흥사길 400[구림리 산9]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황호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2~13세기 - 해남대흥사만일암지오층석탑 조성
문화재 지정 일시 2004년 2월 13일연표보기 - 해남대흥사만일암지오층석탑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46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해남대흥사만일암지오층석탑 전라남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
현 소재지 해남대흥사만일암지오층석탑 -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대흥사길 400[구림리 산 9]지도보기
성격 석탑
양식 방형 옥개석
재질
크기(높이) 5.4m
소유자 대흥사
관리자 대흥사
문화재 지정 번호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두륜산 대흥사만일암 터에 있는 고려시대의 석탑.

[개설]

해남대흥사만일암지오층석탑(海南大興寺挽日庵址五層石塔)은 석가모니의 진신 사리를 모신 건조물이다.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두륜산 대흥사에 있으며 고려 후기인 12~13세기에 조성되었다.

[건립 경위]

만일암대흥사의 산내 암자로 창건과 관련된 기록은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만일암고기』에는 426년 신라의 정관존자(淨觀尊者)가 창건하고 508년 한 승려가 중건하였다고 한다. 아암혜장(兒庵惠藏)이 이런 기록은 당시 상황으로 봐서 사실이기 어렵다고 하였다. 정약용의 『만일암지(挽日庵誌)』에서 1675년(강희 14)에 융신선사(融信禪師)가 중건하고, 현기화상(玄己和尙)이 강희 말년에 중수하였으며, 응명두타(應明頭陀)가 18세기 중후반에 중수하였다고 한다. 이후 1809년(가경 14)에 자암전평(慈菴)과 은봉두운(隱峰斗芸)이 또다시 중건하였으나 당시에도 만일암은 터만 남아 있다고 하였으니 그때에도 암자는 없었던 것 같다. 따라서 만일암은 19세기 초반까지 사세를 유지하다가 이후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만일암에서는 만화원오(萬化圓悟), 연해광열(燕海廣悅), 금하우한(錦河優閒), 금봉희영(禽峰僖永), 백화찬영(白花贊英), 지월정희(智月鼎熙), 응성민훈(應星旻訓) 등의 여러 고승이 머물렀다.

현재는 5층의 탑만 남아 있지만 『만일암지』의 「만일암실적(挽日菴實蹟)」에 암자의 마당 가운데 칠층석탑이 있으며 칠층석탑은 아육왕이 세웠기 때문에 아육탑이라고 부른다고 기록되어 있다. 「만일암실적」에는 만일암은 두륜산 가련봉(加年峰) 아래에 있고 대둔사의 여러 암자 중에 지세가 가장 높고 고기(古記)에 의하면 창건이 가장 먼저이며 여기서 대둔사가 시작된 터라고 말하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정관존자가 만일암을 창건할 때 암자보다 탑을 먼저 세웠다고 한다. 탑을 완성한 후에 암자를 지으려니까, 해가 서산 너머로 기울고 있었다. 그래서 해가 지지 못하게 탑에 묶어 놓고 암자 세우는 작업을 계속하였는데, 암자를 완공한 후에 암자 이름을 잡을 만(挽) 자와 해 일(日) 자를 써서 만일암(挽日庵)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위치]

만일암은 두륜산 주봉인 가련봉 아래 남미륵암북미륵암 중간쯤으로 대흥사 산내 암자 중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대흥사 만일암 터 넓은 평지 중앙에 조성되었다.

[형태]

해남대흥사만일암지오층석탑의 높이는 약 5.4m이다. 절터 중앙에 서 있다. 절터는 부분 정비가 이루어졌다. 석탑 주변은 장대석을 둘러 정비하였는데 기단 하부는 묻혀 있는 상태이다. 현재 상태로는 1단의 기단으로 보이지만 지하 상태를 확인해 보지 않은 상태에서는 단정할 수 없다. 큼직한 장대석 여러 매를 놓아 주변을 탑구로 구획하고 안에 받침돌을 마련하였다. 『대둔사지(大芚寺誌)』에는 아육탑(阿育塔)’이라 언급하면서, “크고 작은 2개의 탑이 만일암의 뜰에 서 있다.”라고 한다. 『만일암지』에는 “뜰에 칠층탑이 서 있다.”라고 층수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기록과는 달리 현재 5층탑이며 일대에서 다른 석탑재는 발견되지 않는다.

탑은 무너졌다가 다시 복원한 것으로 추정되며 초층 탑신은 2매가 가로 방향으로 포개어져 있다. 빗물이 탑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바깥으로 흘러내려 가도록 하는 옥개석 층급 받침은 1층이 5단, 2~5단까지가 4단이다. 받침돌은 너비 142㎝, 높이 65㎝이며 벽석 1개를 동서에 세우고 사이 남북면에 벽석을 끼워 넣어 짜 맞추었다. 4면의 양 귀퉁이에는 모서리 기둥과 중앙에는 버팀기둥 1주씩을 표현하였다. 덮개돌[폭 198㎝]은 1돌이고 아랫면에는 각진 모양의 서까래 모습이 표현되었고 윗면에는 2단 각진 괴임을 마련하였다. 하단[너비 133㎝]은 조금 높고 상단[너비 111㎝]은 아주 낮게 하였다. 탑 몸돌은 모두 1돌이고 1층만 두 개의 돌로 이루어졌다. 탑 몸돌 모두에 모서리 기둥을 표현하였다. 하지만 1층 몸돌의 경우 모서리 기둥을 수평으로 눕혀서 상하로 포개 놓았다. 이러한 모습과 함께 받침돌 덮개돌 일부가 파손된 점, 머리 장식에 올려진 석등 부재 등으로 미루어 넘어진 탑을 재조립한 것으로 추정된다. 2층 몸돌[너비 71㎝, 높이 31㎝] 4면에도 모서리 기둥[너비 19.5㎝]이 도드라지게 표현되었고 5층까지 같은 모습으로 몸돌 높이를 줄여 일정한 체감률을 보였다. 지붕돌은 1층[너비 161㎝, 높이 65㎝]과 2층 아랫면의 받침이 정연하게 5단이고 3층부터 5층까지는 4단이다. 낙수면은 급경사이며 네 귀퉁이에 귀마루가 두텁게 도드라졌다. 처마는 수평을 이루다가 끝에 가서는 약간 들렸다. 윗면에 굄을 생략하였다. 머리 장식은 현재 남아 있는 부재가 없다. 그런데 석등의 간주석 위에 있는 앙련석과 석등(石燈) 화사석(火舍石)[석등의 중대석(中臺石) 위에 있는, 등불을 밝히도록 된 부분] 위로 연결되는 옥개석(屋蓋石)[탑신석 위에 놓는 지붕같이 생긴 돌]이 포개진 상태이다.

[현황]

해남대흥사만일암지오층석탑은 2004년 2월 13일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46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전라남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고,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대흥사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보존 상태가 좋지 못하다. 기단 면석의 틈이 많이 벌어진 점이나 석등 부재를 얹은 지붕돌이 위태롭다.

[의의와 평가]

해남대흥사만일암지오층석탑은 튼튼한 기단부의 구성, 초층 탑신이 다른 예[광주 서오층석탑, 월출산 용암사지 삼층석탑, 광주 춘궁리 오층석탑 등]에서처럼 두 개가 상하로 포개진 기법이 아니고 세로로 세워서 조립하는 특이한 기법을 사용하였다. 다른 석탑에서는 보기 드문 예이다. 지붕돌 윗면 네 귀퉁이의 귀마루를 도드라지게 한 기법은 옛 백제 석탑의 건축적인 요소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붕돌 윗면의 탑신 굄이 없는 점은 시대적으로 내려오는 기법임을 암시한다. 조성 연대는 고려시대인 12~13세기로 보인다. 튼튼한 기단부의 구성, 초층 탑신을 세로로 세워서 결구하는 특이한 기법, 지붕돌 윗면의 네 귀퉁이의 귀마루를 도드라지게 한 기법은 옛 백제 석탑의 건축적인 요소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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