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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건국준비위원회 해남지부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300419
한자 朝鮮建國準備委員會海南支部
영어공식명칭 Preparation Committee for National Construction of Haenam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전라남도 해남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문종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45년 8월 17일경연표보기 - 조선건국준비위원회 해남지부 설립
해체 시기/일시 1945년 10월경연표보기 - 조선건국준비위원회 해남지부 해체
성격 정치단체
설립자 민병승[위원장]|천진옥[부위원장]|김정수[부위원장]

[정의]

광복 직후 전라남도 해남 지역에서 설립된 조선건국준비위원회 소속 지부.

[설립 목적]

조선건국준비위원회는 해방 직후 일본으로부터 행정권을 인수받고 국내 질서를 자주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1945년 8월 15일 여운형, 안재홍 등에 의해 결성되었다. 전라남도 해남 지역도 같은 취지로 조선건국준비위원회 해남지부가 결성되었다.

[변천]

조선건국준비위원회 해남지부가 정확히 언제 결성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1945년 8월 17일 결성된 전남지부와 궤를 같이 하여 결성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건국준비위원회 해남지부는 위원장 천진문, 부위원장 성주남(成周南)·김정수(金正洙)로 하여 임시 결성되었다가, 1945년 9월 18일에 열린 군민대회에서 정식으로 출발하였다. 민병승을 위원장으로 하여, 부위원장 천진옥·김정수·총무위원 도종운, 경제위원 성주남, 문화위원 이성학, 치안위원 김주석이 선출되었고, 천진옥과 김정수가 식량노동위원을 겸임하였다.

민병승은 70대의 온건한 지주였다. 김정수는 일본 와세다대학교를 졸업한 사회주의 사상가였으며, 천진옥은 우익 성향의 인사였고, 도종운은 군청, 이성학은 면사무소에서 근무한 이력이 있었다. 또 조선건국준비위원회 해남지부를 돕기 위해 젊은 사람들로 건준후원대를 조직하여, 대장 김호준(金豪俊), 부대장 김석진(金石辰), 서무부장 김석두(金錫斗), 식량부장 김재섭(金在燮), 운반부장 조석희(趙錫熙) 등이 선출되었다.

초기에는 좌우익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인물들로 결성되어 사상적 갈등이 없었으나, 신탁통치에 대한 찬반 여부로 좌우익으로 분열되었다. 1945년 9월 6일 여운형을 중심으로 인민공화국이 수립된 이후 조선건국준비위원회 해남지부 또한 해체되고 인민위원회로 전환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조선건국준비위원회의 주요 목적은 치안 회복, 질서 유지와 함께 총독부의 행정 공백을 메우는 것이었다. 조선건국준비위원회 해남지부도 이러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조선건국준비위원회 해남지부 또한 치안대가 결성되어 질서유지에 앞장섰으며, 군청의 일반 업무 등 행정 업무도 관장했다. 당시 치안대 대장이었던 김주식은 질서를 회복하고 일본인 습격를 예방하는 데 주력하였다고 한다.

[의의와 평가]

조선건국준비위원회 해남지부는 해방 후 혼란스러운 정국 안정과 새로운 조국 건설이라는 사명을 띠고 결성되었다. 조선건국준비위원회 해남지부에는 해남의 유지급 인물들이 모두 참여하였으며 해남의 혼란을 극복하고 안정시키기 위해 노력을 하였다. 조선건국준비위원회 해남지부의 활동에 군민들 또한 적극 동참하였다. 조선건국준비위원회 해남지부는 좌우 가리지 않고 조국의 건설을 위해 최선을 다하였으나 신탁에 대한 찬탁·반탁 논쟁과 인민위원회로의 개편 과정에서 갈등을 겪게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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