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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300349
한자 新彌國
영어공식명칭 Sinmiguk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지역 전라남도 해남군
시대 고대/초기 국가 시대/삼한
집필자 신동범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 백포만 일대에 있었다고 비정되는 삼한시대 마한의 소국.

[개설]

마한은 삼한시대 한반도 중서부에 존재하였던 연맹체이다. 『삼국지(三國志)』 동이전(東夷傳)에 따르면 모두 54개의 소국이 존재하였는데, 그중의 하나가 신미국(新彌國)이다.

[제정 경위 및 목적]

마한 지역에는 기원전 2세기 말~기원전 1세기 무렵 철기 문화 단계에 이르러 원시적인 공동체가 붕괴되고 소국, 혹은 성읍국가(城邑國家)라고 하는 정치체들이 등장하였다. 세형동검 문화(細形銅劍文化)를 배경으로 대두된 다수의 정치집단들이 지속적으로 성장하였다. 마한의 소국이었던 신미국도 그러한 과정을 거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관련 기록]

3세기 후반에 중국 사서인 『진서(晉書)』 장화열전(張華列傳)에 신미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나온다.

[내용]

『진서』 장화열전에 “29국의 동이마한신미제국(東夷馬韓新彌諸國)이 282년에 처음으로 진(晉)에 사신을 파견해 왔다.”라는 내용이 있다. “이에 장화를 ‘지절 도독유주제군사 영호오환교위 안북장군(持節都督幽州諸軍事領護烏桓校尉安北將軍)’으로 삼아 전출하였다. 신구(新舊)의 세력을 무마하여 받아들이니 오랑캐와 중국이 그를 따랐다. ‘동이마한신미제국’은 산에 의지하고 바다를 띠고 있었으며 유주(幽州)와의 거리가 4,000여 리였는데, 역대로 내부(來附)하지 않던 20여 국이 함께 사신을 파견하여 조공을 바쳐 왔다. 이에 먼 오랑케가 감복해 와서 사방 경계가 근심이 없어지고 매해 풍년이 들어 사마(士馬)가 강성하여졌다.”

[변천]

서해와 남해를 잇는 해로의 중간에 위치한 해남반도를 중심으로 해상교역의 주도권을 장악한 집단은 신미국이었다. 신미국은 3세기 후반 영산내해를 비롯한 서남해 지역 토착 사회의 연맹체 형성을 주도하였다. 신미국의 위치에 대해서는 해남의 북일 지역, 나주의 반남, 고흥의 해창만 등으로 보고 있다. 신미국은 3세기 말에 이르러 주변의 20여 개 소국을 이끌고 4,000리[약 1,571㎞] 떨어진 요동의 양평(陽平)에 있던 서진(西晉)과 접촉하였다. 서진이 ‘8왕의 난’ 여파로 양자강 남쪽으로 천도하자 동이교위부(東夷校尉府)가 붕괴되면서 중국과의 대외교섭이 어렵게 되었다. 또한 313년 고구려에 의해 낙랑군과 대방군이 요서(遼西)로 축출되고, 4세기 중반부터 이 지역의 중심이 나주, 영암 지역으로 옮겨가면서 쇠퇴하였다.

[의의와 평가]

3세기 후반 신미국이 성장하여 연맹체 사회의 형성을 주도하였으며, 낙랑·가야·왜를 연결하는 길목인 해남군 현산면 백포만 일대에 자리하였다. 서남해 지역의 대외교역 거점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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