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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300285
한자 登山津
영어공식명칭 Deungsanjin
이칭/별칭 사도진,마래섬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고지명
지역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구림리
시대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변남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비정 지역 등산진 -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구림리 지도보기
성격 고지명
관련 문헌 『여지도서(輿地圖書)』|『해남읍지(海南邑誌)』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구림리 모래섬에 있었던 조선시대 나루.

[개설]

등산진(登山津)해남현의 화원반도에서 무안 목포진과 통하는조선시대의 나루였으며 일제강점기까지도 이용되었다. 등산진에는 등산원이 설치되어 관리들이 배를 기다리는 장소로 이용되었다. 당시 등산진의 나룻배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해남, 진도, 강진 등에 많은 나머지, 배 순번 또는 바람과 물때를 기다리며 지체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구림마을에는 매일 장이 섰다고 한다. 모래섬과 구림마을에는 당이 있었다. 모래섬의 경우는 당집은 없고 당산나무에 연초에 무사 항해를 기원하는 제사를 올렸다. 현재도 큰 나무가 원집의 서쪽 80m 위에 있다.

[명칭 유래]

등산의 어원은 등산진 인근의 월산에서 유래한다. 월산마을을 한자로 표기할 때 오를 등(登), 뫼 산(山), 즉 등산(登山)이 된다.

[형성 및 변천]

현재 모래섬은 시멘트 포장도로로 연결되어 썰물 시에 건널 수 있다. 옛날에는 말을 타고 와 모래섬에 묶어 놓고 배를 타고 목포진으로 건너갔다. 섬의 동북단 선창의 서쪽 비탈에 원집과 원님 수발자의 초가가 두 채 있었다[N 34° 44′ 14.8″ E 126° 20′ 02.5″]. 마지막 원님 수발자는 김영팔이라는 사람이었다. 민간인은 선착순으로 배를 이용하였으나 원님의 장계를 가진 자는 우선하여 배편을 이용하였다. 일제강점기에 나루에는 8척의 나룻배가 있었다. 현재 모래섬 선창은 바위 위를 시멘트로 덮었으나 이용하지 않는다.

[위치 비정/행정 구역상의 구분]

등산진화원면 구림리 모래섬에 있었으며, 이칭으로 사도진(沙島津)이라고도 하였다. 주민들은 마래섬이라고도 불렀다. 모래섬은 구림마을의 북쪽 1㎞ 지점에 있는 작은 섬으로 나루 선창은 섬의 동북단에 있었다. 등산진은 『여지도서(輿地圖書)』에서는 “등산원(登山院)해남현의 북쪽으로 110리[43.2㎞]에 있다.”라고 하였고, 『해남읍지(海南邑誌)』에는 “현 서쪽 100여 리[약 39.27㎞]에 있으며 수로는 30리[약 11.78㎞]”라고 기록되었다.

[관련 기록]

『대동지지(大東地志)』에는 등산진의 위치와 무안 목포진과 수로 20리[약 7.85㎞]임[登山津 西北九十里 通務安木浦津 水路二十里]이 기록되어 있다. 『해남읍지』[1872]에서 “등산진은 해변에 작은 섬이 있는데 거기에 원정(院亭)이 있고 무안 목포진과 통한다[登山津 在縣西百餘里 水路三十里 通務安界木浦鎭 海邊有小島 中有院亭].”라고 하였다. 1925년 간행된『해남군지』에는 목포를 왕래하는 나루인 사도진(沙島津)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광여도』등 고지도에 목포 수군진 남쪽에도 ‘등산진’이 표기되어 있는데 해남의 화원면의 등산진과 상응하는 나루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해남으로 통하고 그 물길의 폭은 30리라고 기록되어 있다. 등산진해남현의 화원반도에서 무안현 목포진과 통하는 나루임을 알려 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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